고려장을 없앤 차돌이의 효심
고려장을 없앤 차돌이의 효심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차돌이라는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매우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차돌이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낡은 초가 집 한 채뿐이어서 무척 가난했지만,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손자를 길렀다. 차돌이가 씩씩하고 착하게 커 가는 것이 그저 대견스럽고, 한편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할머니, 힘드시지요?"
차돌이가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 할머니는,
"아니다. 우리 차돌이가 있는데, 힘들긴 뭐가 힘들겠느냐?"
하고 빙그레 웃곤 하셨다. 하긴 차돌이가 있어서 할머니는 힘든 줄을 모르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해내셨다. 그러다 보니 차돌이도 어느덧 어엿한 소년이 되었다. 할머니를 도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기도 하고 장작도 팼다.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다 보니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차돌이에게는 큰 걱정이 생겼다. 일을 하지 못하는 거야 차돌이가 돌봐 드리면 되겠지만, 고려장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려장이라 하는 것은 힘이 없어 일을 할 수 없게 된 노인을 멀리 산에 갖다 버리는 아주 고약한 풍습이었다. 고려장은 오래 전부터 이 나라에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고려장을 지낼 때가 되면 집 안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지만,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 국법으로 만들어 놓아, 어기면 가족이 모두 고려장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돌이는 할머니 때문에 밥도 먹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할머니가 바깥출입을 안 하신다 해도 고려장을 지내야 할 할머니가 계신다는 것은 온 동네가 다 아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그걸 알고도 모른 척하면 그 사람들도 나라 법을 어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몇 달 며칠을 고민하던 차돌이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차돌이는 베게에다 할머니의 치마저고리를 입히고 지게에 올려놓은 뒤 울며불며 마을 한복판을 지나 산으로 향한 것이었다.
"쯧쯧쯧, 차돌이가 할머니를 버리러 가는구먼."
마을 사람들이 보고 눈시울을 적시었다.
"어이구, 어쩌자고 이런 고약한 법이 생겼는지, 원!"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노인은 일도 못 하는데 음식만 축낸다고 해서 그런다고 하지 않아요."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으로 간 차돌이는 베개를 버린 뒤 빈 지게를 지고 돌아왔다.
'내가 할머니와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살아 계신 우리 할머니를 내다 버릴 수는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락 한 모퉁이에 할머니를 업어다 놓았다.
"할머니, 답답하시더라도 참고 견디세요. 여기에 휘장을 치고 옷 보퉁이로 막았으니까, 아무도 모를 거예요."
"차돌아, 난 여기가 더 불편하다. 나 때문에 네가 벌을 받을까 봐 이 할미는 걱정이 태산 같구나! 차라리 나를 산에 갖다 버려라."
할머니는 걸을 수만 있다면 혼자서라도 산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머니, 들킬 염려는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그저 맘 편히 오래오래 사시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어요. 언젠가는 이 나쁜 법이 없어지겠지요."
"고맙구나! 나야 좁으면 어떠냐? 이만큼이라도 돌아누울 수가 있으니 좋고, 밥 갖다 줄 때라도 너를 볼 수 있으니 좋다만, 네가 걱정이 된다. 언젠가도 노인을 숨겼던 건넛마을 박씨 부부가 함께 고려장을 당했다던데...."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자 차돌이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와 생이별을 하는 것보다 함께 고려장을 당하는 게 나아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나라에서 사신 왔다.
사신이 모란꽃 두 송이를 가져왔는데, 한 송이는 진짜 꽃이고, 또 한 송이는 가짜 꽃이라고 합니다.
"자, 어느 것이 진짜 꽃이고, 어느 것이 가짜 꽃인지를 가려내 보시오. 지금부터 사흘의 여유를 줄 테니 그 안에 알아맞혀야 하오."
사신의 거만스러운 말에 모여 섰던 신하들은 물론, 임금님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임금님은 장터마다 마을마다 방을 붙이라고 명령했다.
"진짜 꽃과 가짜 꽃을 가려내는 백성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고 소원을 들어 주리라."
이 방을 본 차돌이는 집으로 돌아가 허둥지둥 다락으로 올라갔다.
차돌이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장터에서 본 방의 내용과 사람들이 술렁이던 이야기를 속삭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할머니는 잠깐 생각하시더니,
"얘야, 그 문제를 네가 맞힌다고 하여라."
라며 차돌이 귀에 뭔가 소곤소곤 일러 주셨다.
차돌이의 눈이 번쩍 빛났다. 할머니의 지혜가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차돌이는 서둘러 대궐로 갔다.
"자, 약속한 날짜가 오늘이오. 누가 문제의 답을 맞히겠소?"
사신이 고개를 치켜들고 물었다.
"제가 맞히겠어요."
차돌이가 나섰다.
그러자 모두 깜짝 놀랐다. 문제를 맞힐 때까지는 백성들 누구나 꽃이 있는 궁전에 들어와 구경을 할 수는 있었으나, 막상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라하게 보이는 시골 소년이 나섰으니, 모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맞히겠다고? 으하하하."
사신이 큰 소리로 웃었다.
" 그렇습니다. 이런 것쯤으로 우리나라의 어른까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신께서는 어느 꽃이 진짜 인지 알고 계시죠?"
"물론이다."
"그렇다면 어느 꽃이 진짜인지 종이에 써서 미리 가지고 계십시오. 나중에 제가 맞힌 것이 아니라고 우기시면 안 되니까요."
"좋다, 그렇게 하지."
사신은 종이에다 어느 꽃이 진짜인지를 써 가지고 주머니에 넣었다.
두 송이의 꽃은 각각 탐스러운 모습으로 꽃병에 꽂힌 체 상위에 놓여 있었다. 차돌이는 정원에 나가 벌을 한 마리 잡아 왔다. 그리고 그 벌을 꽃병 가까이에 놓았다. 벌은 두 꽃 주위를 한 바퀴씩 맴돌더니, 그 중 한 꽃 속으로 들어가 꿀을 빨기 시작했다.
"지금 벌이 들어간 꽃이 진짜 꽃입니다. 벌은 진짜 꽃을 알아보는 법이거든요."
사신은 깜짝 놀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 나라 어린이가 이만큼 슬기롭다면, 앞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임금님께 이 사실을 전하겠소."
사신은 도망치듯 궁전을 빠져나갔다.
"허허, 참으로 기특하도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지금 이 방법은 저희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의 소원은 고려장을 폐하는 것이옵니다."
이로써 차돌이의 소원대로 온 나라에 방이 붙여지고 고려장은 없어졌으며, 차돌이에게는 집과 논을 상으로 내려 주셔서, 차돌이와 할머니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