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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과 통한 그랜트 장군

forever1 2020. 3.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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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과 통한 그랜트 장군

 

1860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제도(奴隸制度, slavery) 반대 운동은 미국의 남부지역이 미연방(美聯邦,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서 탈퇴하면서 급기야는 남북 간에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남북은 양측 공히 100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치열한 살육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南北戰爭, American Civil War) 기간 중 초기 전투에서는 남군의 대공세로 북군이 다소 불리한 전세를 가지게 되었으나, 1864년 그랜트(Grant) 장군(將軍, general)이 북군 총사령관(總司令官, the supreme commander)에 임명되면서부터 전쟁의 주도권은 북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랜트 장군은 화려한 전술보다는 지속적이고 치열한 전투력에 의하여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하면서 남군에 대하여 무자비한 공격 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랜트 장군은 전쟁 이전에는 별로 특출한 인물이 아니었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전투 중에는 간단명료한 명령과 지시, 그리고 짧은 메모를 통하여 부대를 능률적으로 통솔하였습니다.

또한 부하를 아끼고 친구와의 의리(義理, loyalty)를 중요시하는 남다른 우정(友情, Friendship)은 북군 사령관직에 있으면서도 비록 전투 중일지라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그랜트 장군의 오랜 친구들 중에는 남군 측의 회색 군복을 입고 복무하는 친구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총대를 겨눠야 하는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는 날 전투(戰鬪, battle) 중 남군 소속의 친구 중에 득남(得男, begetting a son)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랜트 장군은 예하 포병 지휘관에게 축포(祝砲, cannon salute)를 발사 하였습니다.

또한 부하 몇 명을 대동하여 목숨을 걸고 전선을 침투하여 남군 측으로 들어가 친구에게 축하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였답니다.

남북전쟁은 그랜트 장군의 면밀한 전략과 대공세로 1865년 남군이 무조건 항복(降伏, surrender)을 함으로써 5년간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전후(戰後) 그랜트 장군은 미국의 제18대 대통령(大統領, President)에 당선되었고, 문장력도 뛰어난 그는 후일 임종 직전까지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을 집필하여 현대 미국 문학의 금자탑(金字塔, monumental achievement)을 이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제도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그였지만, 그의 아내는 집에서 많은 노예(奴隸, slave)를 부리고 있었으니 그랜트 장군의 아내 사랑도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며 아이러니(irony)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중성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전장의 미담 진담 - 양대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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