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cucumber)
물이(cucumber)
‘물이’는 이곳 경상도 사투리도 오이를 말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은 좀처럼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젊은이들도 ‘물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에게 일부러 ‘물이’를 달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이 “그게 뭔데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오이를 이곳에서는 ‘물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을 하면 종업원은 웃으며 오이를 가지고 옵니다.
아마, 이곳 터를 기반(基盤, base)으로 사셨던 조상님들은 물이 많은 과일이라고 해서 ‘물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이보다는 ‘물이’가 더 맞는 말인 것 같고 정겹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중국에서는 황과(黃瓜)라고 부르는 오이는 인도가 원산지(原産地, origin)로 추정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어제 집사람과 함께 텃밭 빈터를 일궈 비닐을 씌운 후 약 50포기를 심었습니다. 모종(某種, seedling)을 인터넷으로 집사람이 구입했는데,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으라고 했다며 5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비가 내려서 오이가 잘 살아 붙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95% 정도의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이는 우리 체내에 수분을 공급하고, 면역력 증대, 소화 개선, 암 예방, 손톱 및 머리카락 건강, 체중 감량, 관절건강, 혈관질환 예방(평소 고혈압을 비롯한 혈관 질환을 앓고 있다면 오이 섭취를 추천합니다), 피부미용, 입 냄새 제거 • 숙취, 이뇨작용과 붓기 해소 등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오이는 다른 채소에 비해 시트룰린(citrulline)의 함유량이 많은데 이 시트룰린은 혈액순환을 도와주며 발기(勃起, erection)의 질을 높이므로 천연 비아그라(natural viagra)라고 불린답니다.
이렇게 좋은 오이가 마트나 시장에 가면 아주 싼 값에 살 수가 있으니, 많이 사서 먹는 것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50포기나 심었으니 많이 따서 먹어야겠습니다. 특히 텃밭을 가꾸다가 목이 마르면 얼른 따서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에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마당에 커다란 오이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집 딸이 몰래 따 먹더니 덜컥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크게 화가 난 부모가 아비 없이 낳은 아이라며 숲에다 버렸답니다. 딸이 몰래 찾아가 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덮어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범상치 않은 아이라 여겨 다시 데려다 키웠더니 자라서 승려가 됐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 음양풍수설의 대가이고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에 청암사를 창건한 도선국사(道詵國師)입니다.’
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개국공신(開國功臣) 최응과 관련한 이야기다. 최응을 임신했을 때 집에서 키우던 오이 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열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궁예에게 고발을 하니 궁예가 불길하다며 아들을 낳으면 버리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최응의 부모는 아이를 낳아 몰래 키웠고, 그 아이가 나중에 장성해서 대학자가 된 후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했다.’ 《고려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상들만 오이를 성숙의 상징으로 보고 오이에서 다산의 의미를 찾은 것은 아니랍니다. 고대 서양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오이를 아예 정력제와 강장제, 여인의 성숙을 촉진하는 채소로 여겼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오이를 강장제로 생각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오이가 정신적으로 강인한 힘을 주는 채소라며 전투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오이를 절인 식품인 피클(Pickles)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효능과 아름다운 전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오이를 정성스럽게 가꾸어서 이웃에도 직원들에게도 나누어 줘야할 것 같습니다.
2020년 5월 3일
글쓴이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