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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와 이웃 처녀

forever1 2020. 10. 2. 11:30

정인지와 이웃 소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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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와 이웃 처녀

 

정인지(鄭麟趾)는 1396년(태조 5년) 12월 28일, 석성 현감 정흥인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本貫, main)은 하동입니다.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로, 학역재라는 호는 그가 평생 역학(易學)에 정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안정공 조후의 딸 한양 조씨와 결혼했으나 사별(死別, bereavement)하고, 판한성부사 이휴의 딸 경주 이씨와 재혼(再婚, remarriage)했습니다.

세종 시대는 한국사의 무수한 천재들이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거두었으면서도 이후의 행적 때문에 세인들에게 평가절하(平價切下, devaluation되었던 인물이 정인지입니다. 그는 태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일곱 명의 임금을 섬긴 그는 조선 초기 대표적인 학자의 한 사람으로 천문을 비롯하여 역법(曆法, calendar)과 아악(雅樂) 등에 특히 뛰어났습니다.

문성공 정인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과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글 재주가 조숙하고 용모(容貌, appearance)가 옥과 같았습니다. 일찍이 바깥채에서 밤늦도록 글을 읽었는데, 담을 이웃한 옆집에는 얼굴이 뛰어나게 곱고 지체가 높은 양반의 처녀(處女, maid)가 있었습니다.

낭랑(朗朗, sonorous)하게 글 읽는 소리의 주인공이 미소년(美少年, handsome boy)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모하여 밤에 담을 넘어와서 가까이 하려 하였습니다.

정인지가 정색하며 거절하니 소녀가 소리를 지르겠다고 위협(威脅, threat)하였습니다. 정인지는 그가 거절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달래기를 “내일 어머님에게 말씀드려 백년의 인연을 맺겠오. 우선 참았다가 두 집에서 정식으로 혼례(婚禮, wedding)를 하는 것이 좋겠오.” 하니, 처녀가 매우 기뻐하며 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다음 날 정인지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얘기하여 다른 집으로 옮기고는 종적을 끊어버렸습니다.

굴러 들어온 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뭔가 다른 것이 있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해낼수가 있다.’라고 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말이 생각납니다.

 

단기(檀紀) 4,353년(서기 2,020년) 10월 2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