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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집’과 하쎌바하

forever1 2021. 1. 10. 13:04

‘베토벤의 집’과 하쎌바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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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집’과 하쎌바하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1770년 12월 17일 ‘요한 판 베토벤’과 ‘마리아 마크달레나 판 베토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궁정합창단 음악감독이었고, 아버지 역시 합창단(合唱團, chorus) 가수였으므로 음악가 가문(家門, one's family)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가세가 기울자 11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18세에는 가족의 생계(生計, livelihood)를 꾸려가야 했는데, 베토벤은 폭넓은 교양의 소유자인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演奏者, performing arts) 네페에게 음악을 배워 작곡(作曲, musical composition)을 시작했고, 선제후의 후원으로 빈에 가서 모차르트를 만났습니다.

베토벤의 즉흥연주 솜씨에 감명을 받은 모차르트가 친구들에게 “이 젊은이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본으로 돌아와 연주자와 음악 교사(Music teacher)로 일하면서 작곡을 계속했습니다. 하이든 역시 그의 악보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였으나 전쟁으로 성사되지 못했답니다.

베토벤의 집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물론 베토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소유로서의 집을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집을 빌려서 살았으며 자주 이사 다녔습니다.

베토벤은 빈 시내에서만 거의 80여 회의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빈의 집 중에서 세 집 건너 한 집이 베토벤 집인 곳도 있다고 합니다. 참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1997년 1월 호인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雜誌, journal)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일의 본에 있는 ‘베토벤의 집’에는 매년 많은 관광객(觀光客, traveler)이 베토벤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찾아온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태어나서 22년간 성장기를 보낸 그의 집은 아직도 깨끗하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박물관(博物館, museum)인 베토벤의 집은 쉽게 지켜진 것이 아닙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본 시가지의 하늘은 연합군 폭격기(爆擊機, bomber)들로 까맣게 뒤덮였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하쎌바하와 그의 아내 안나도 간신히 방공호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축을 뒤흔드는 폭격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교차하였지만, 하쎌바흐는 베토벤의 집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토벤의 집으로 달려가 보니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하쎌바하는 정신없이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그의 아내도 나와 물을 날라주었습니다. 아홉 시간 동안 지하실로부터 위층으로 물통을 날라 불을 끄고 나니 현기증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용기를 내라! 내 정신은 내가 휘어잡아 이겨내야 한다.’라는 베토벤의 말이 하쎌바하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 하쎌바하는 다시 힘을 내 베토벤의 유품(遺品, relic)을 옮겼습니다. 책에서부터 가구까지,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짐을 날랐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유품들이 홀부르크성의 지하보관실에 무사히 보관되는 것을 다 본 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군들에게 이 집을 내줄 수 없으니 폭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독일군에게 끝까지 맞서 베토벤의 집을 지켜냈습니다.

1959년에 퇴직한 그는 25년의 재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급료를 주겠다는 제의도 다 뿌리치고 끝까지 베토벤의 집을 지킨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토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난 그분의 충실한 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그럴 것입니다.”

하쎌바하는 1976년 9월 서독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덟 달 뒤인 1977년 5월에 베토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하쎌바하처럼 신념(信念, belief)이 강하고 주인을 끝까지 섬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요즘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오로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은혜(恩惠, grace)와 인연(因緣, hetu-pratyaya)을 저버리고 불법과 불의를 서슴지 않는 사람은 하쎌바하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은 가장 많이 은혜를 입는다,”라고 했습니다.

 

단기(檀紀) 4,354년(CE, Common Era 2,021년) 1월 10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