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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설

forever1 2021. 2. 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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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설

 

설날을 영어로 ‘Lunar New Year's Day’ 혹은 ‘The first of the year’라고 합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설에 대한 추억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설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답니다. 섣달그믐날인 오늘은 ‘잠을 자면 눈썹이 쇤다.’라고 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어머님께서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까만 그을음이 올라오는 기름불에 머리카락을 태운 기억도 있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밀가루를 조금 가지고 와서 잠자고 있는 동생 눈썹에 바른 적도 있답니다.

‘슬프다’, ‘섧다’, ‘삼가다’, ‘설다’, ‘낯설다’ 등의 어근에서 온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40살이 넘으면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이 조금은 슬프고, 60살이 넘어서면 슬프다 못해 서럽기도 합니다. 그런 설을 다음 백과사전에 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신일(愼日)·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밖에 설을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에는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이 밖에도 설이 새해 첫 달의 첫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설을 설명절이라고도 하거니와 설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을 설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다. 그중에서 설날과 보름 명절을 크게 여겼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 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다. 곧 농경 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 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다.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보름과 8월 보름 추석은 또한 각별하다.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는 점에서 보다 중시되어 대보름 명절이라고 한다. 8월 보름 명절은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 국가에서 여름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시기로 수확을 앞둔 명절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볼 수 있다. 『수서(隋書)』와『당서(唐書)』의 신라에 대한 기록은 왕권 국가다운 설날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즉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라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설명절이 역법 체계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진수가 쓴 역사서『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을 통해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가령, 은 정월(殷 正月), 그리고 5월과 10월의 농공시필기 등과 같은 표현은 당시 역법(曆法)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은 정월은 은나라의 역법을 지칭하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음력 섣달에 해당한다. 이처럼 당시 부족국가들이 역법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역법을 통해 각 달을 가늠하고 세수(歲首)인 설이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다만 나라에 따라 설을, 또는 정월을 언제로 설정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우리 문헌에도 설명절의 연원과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 때 궁중에서 궁주(宮主)와 중의 간통 사건이 있어 이들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해마다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上午)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달도(怛忉)라 했다. 달도는 설의 이칭이기도 하므로 설의 유래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상해·상자·상오일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에 해당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 秋夕), 중구(重九), 팔관(八關), 동지(冬至)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 시대는 원단·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전 시대보다 세시 명절과 그 무렵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했다.

그런데 설이란 말이 설날 이외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아세(亞歲) 곧, ‘작은 설’이라 불리는 동지이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면서 전통명절인데, 설날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하듯이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작은 설로 여기는 까닭은 중국 후한 시대(22∼220)에 동지를 세수(歲首)로 삼았던 데에서 근거한다. 사실상 24절기는 동지를 0으로 하고 첫 기번(氣番)으로 소한, 두 번째 기번은 대한으로 하며 입춘은 3번이 된다. 동지 기번을 0으로 한 까닭은 역(曆) 계산의 출발을 동지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열두 띠로 일컬어지는 십이지를 말할 때 첫 달인 자월(子月)은 정월이 아니라 음력 동짓달이 된다. 그 후 섣달은 축월(丑月), 정월은 인월(寅月), 2월은 묘월(卯月)…… 등의 순으로 불린다.>

섣달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세 개씩 묶은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팔러와서 어머님께서 사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구한 말 개화기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우리의 설이 빛이 바래기 시작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을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답니다. 설날엔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서 제사음식을 싸 오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 정서를 그들은 무너뜨릴 수가 없었답니다.

한때 우리의 설날을 ‘민속의 날’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는데, 1999년 ‘설날’의 명칭을 되찾았답니다.

우한 코로나19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정부에서 강력히 추진하니까, ‘설 대목’이라는 말도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설이 설답지 않다’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올해 설에는 손자, 손녀도 한 번 안아주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즐겁고 행복한 설이 되시고 가정에 건강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특히 운전 조심하시길 빌겠습니다. 설날 아침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선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단기(檀紀) 4,354년(CE, Common Era, 2,021년) 2월 11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