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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과 스콧 대령 그리고 에디슨

forever1 2021. 10. 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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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과 스콧 대령 그리고 에디슨

 

『진실한 사과는 우리를 춤추게 한다』라는 책에 나오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大統領, president)이 ‘사과(謝過, apology)’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남북전쟁(南北戰爭, Civil War)을 하는 동안 수도를 지킨 스콧 대령이 링컨 대통령을 직접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스콧의 아내는 불의의 사고(不意의 事故, accident)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스콧 대령이 아내의 장례식(葬禮式, funeral)에 참석하기 위해 상사인 연대장에게 휴가를 신청했지만, 전쟁이 워낙 급박했던 만큼 연대장은 휴가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스콧 대령은 반드시 아내의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위계질서(位階秩序, order of rank)를 어기고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인 링컨에게까지 찾아갔습니다.

우여곡절(迂餘曲折, vicissitude) 끝에 링컨 대통령을 만난 스콧 대령은 자신의 사정을 상세히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니,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까요?

링컨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냈답니다. 군에서 이미 휴가를 거절했으면 가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 상황의 어려움과 대통령인 자신의 힘든 상황을 강조하면서 스콧 대령에게 분노(憤怒, anger)를 표출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인사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스콧 대령은 좌절감(挫折感, frustration)에 빠져 막사(幕舍, barracks)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링컨 대통령이 스콧 대령의 막사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내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네. 밤새 자네에게 했던 말을 후회하다가 용서(容恕, forgiveness)를 청하러 왔네.” 진심을 담은 사과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이어서 조금 늦었지만, 스콧 대령이 아내의 장례식에 갈 수 있도록 조처하고 배웅을 해줬습니다. 물론 스콧 대령은 자기 부인의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부대에 복귀(復歸, come back)했습니다.

갑자기 토머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생각납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1200번이 넘는 실패를 맛보았습니다.(Thomas Edison failed more than 1,200 times in his effort to invent an incandescent bulb.)

하지만,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메리 스틸웰(Mary Stilwell)은 알코올중독(alcoholism)에 시달리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지만, 그는 부인 장례식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은 길거리에서 아사(餓死, death from hunger )했으며 그나마 잘 자라난 셋째, 넷째아들 역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단지 일주일 정도 기억에 불과하다고 밝힐 정도였습니다. 그의 머리는 온통 발명과 관련된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훌륭한 발명품을 많이 발명해서 발명왕(發明王, king of invention)이라고 하더라도 가정에는 빵점인 그의 인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단기(檀紀) 4,354년(CE, Common Era 2,021년) 10월 4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作家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