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1912-13
-캔버스에 유채, 188×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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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과 소, 닭, 서커스와 더블어 샤갈의 주요한 조형기호(造型記號)가 된
바이올린은 여기서는 아직 충분히 그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1909년의 <결혼>에서는 혼례 행렬의 선두역을 맡은 악사로, 또한 1911년의
<바이올린 주자>에서는 문전 걸식을 하는 노인의 장사 밑천으로,
이 그림에서는 주정꾼의 노리개에 불과하므로 어느것이나 사랑이 뿌려 주는
별들의 하나로 변모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기서 악기는 맑은 날에 지붕위에 올라가서 흥취있게 악기를 켜고있던 작가의
어린시절 숙부들의 추억과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인물은 초자연적인 색채와
크기로 그려져 있으며, 지붕이라기 보다는 지구를 딛고 서있는 듯하며, 또한
다채로운 발자취는 천상의 눈(雪)위에 남겨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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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1933
-캔버스에 유채, 102×69cm
-텔아비브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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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주제는 처음이 아니다.
10년전 그려진 <푸른 유태인 (또는 교부)>도 홀로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토라를 안은 교부 곁에 위로하는 기호(바이올린)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교부는 그것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에수가 깃들어 있다.
배경은 비태프스크의 집들인데, 그 후에는 성서의 세계와 향리가 샤갈의 작품 중에서
슬픔과 사랑의 이중주를 연주하게 될것이다.
이 고독자의 자세는 2,500년 전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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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마사]
-1931
-캔버스에 유채, 100*82cm
-암스테르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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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가선 서커스를 주제로한 연작을 그리게 되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이다.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고
꽃다발을 입에 문 백마가 있고, 그위에 올라탄 빨간 부채를 든 빨간 옷의 여인과
초록색 상의의 연인이 있다. 오른쪽 밑의 멀리로는 러시아의 마을과 곡마단이 있고,
그와 대각선을 이루는 화면 왼쪽 위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사나이가 보인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사랑의 찬가인데, 샤갈의 독특한 환상인 이 찬가는 주제 요소의
매혹적인 중첩과 꿈속 같은 색조 분위기로 인해 무한한 변주를 보인다.
샤갈은 만년의 많은 작품에서처럼 유년 시절의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그에게 있어 그러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상상력에 의해 여러번 되풀이되고
그모습도 달리하고 있으나 긴 생애 동안 그의 마음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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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일]
-1915
-80.7*99.7cm
-뉴욕 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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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여성의 동작에 따라 이 불가능한 도약이 그려졌으나,
허공에 나타난 것처럼 그녀에게 입맞추는 목의 묘사법은
15년 후의 <아크로바트>에 연결된다.
대상을 언제나 휘어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제작 충동이 이 커플로 하여금
약간 희화적 이긴 하나, 결코 부자연스럽게는 보이지 않는 표현이 되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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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을]
-1911
-캔버스에 유채, 192.2*151.6cm
-뉴욕 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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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입체주의의 분석적 방법을 습득하고, 다시 들로네와 같은 화가의
빛을 동반한 색채 수법을 흡수한 샤갈은 그 새로운 여러 수법을 자기 것으로 하여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는 연작을 남겼다. 이 대작에는 멀리 교회와 집들이
나타나 있고, 농구를 짊어진 농부와 우유를 짜는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
아래쪽엔 꽃이 핀 한 그루의 나무가 서있다. 그리고 화면의 양쪽을 암소의
머리와 샤갈 자신의 얼굴이 점거하고 있다.
고향 생각의 여러 요소들이 원과 삼각형 및 대각선, 신비스런 색채, 이미지의
투명한 중첩, 파랑과 빨강과 초록의 대비 속에 마음껏 환상의 날개를 편다.
[파리에 와 있는 나에게 고향 마을이 암소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이 그리운 듯한 암소의 눈과 나의 눈이 뚫어지게 마주보고, 눈동자와 눈동자를
잇는 가느다란 선이 종이로 만든 장난감 전화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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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암소, 그리고 다른 것들에게]
-1911
-캔버스에 유채, 156*1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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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으로 1910년에 파리로 간 샤갈은 맨 먼저 야수파의
강렬한 원색 구가(仇家)에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스는 입체주의의 영향도 빋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롭고 다이나믹한 공간 취급의 방법을 자신의 환상의 세계에
결부 시키는 형식으로 입체주의를 소화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당시 레제, 들로네, 모딜리아니, 수틴 등이 살고 있던 몽파르나스
근처의 라 디슈(벌집이라는 뜻)라 불리던 보잘것 없는 공동 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세계에 전념했다.
거기에서 그는 시인 아폴리네르, 생드라르스 등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생드라르스의 시에서 힌트를 얻어, 구고 온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물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유태인 교회도 보이는 주택가, 자신을 길러준 러시아 대지를
상징하는 암소, 목이 달아나고 있는 여인, 무지개 빛이 비낀 하늘 등을 중첩시킨
화면 구성은 입체주의의 적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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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1933~44
-캔버스에 유채, 131*194cm
-파리 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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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근 10년간이나 걸려 완성시킨 그림이다.
여기엔 그전까지의 삶의 기쁨으로서의 환상과 서정을 노래하던 샤갈의 모든 환상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날개 달린 시계, 몸을 붙인 연인들,
염소와 말, 고향의 마을과 하늘, 그리고 바이올린, 천사....반면, 침대에 길게 누운
젊은 여인의 나상은 현실적 관능미와 청결함을 발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화면 구성이긴 하지만, 내용의 여러 요소들은 색채의
특이한 발언과 부드럽고 미묘한 뉘앙스의 확산 속에 깊은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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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Chagall, Marc 1889~1985)
파리에 거주하는 샤갈은 한 보헤미안 동료는 샤갈을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 애칭은 어떤 관점에서 이 예술가가 후일 비평가나 미술사가들로부터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함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화가-시인으로서의 샤갈의 정체는 앙드레 브르동이 그를 현대 회화에 '변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조형 예술의 위대한 천재로 규정한 점에서 선명하게 드러 난다.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지과 민속적인 이야기에 애정을 지닌 샤갈은 이러한
주제들을 회화에 끌어들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주제를 거부하는 가장 급진적인 전위
미술가들에 의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시적인 정신과 문화적인 해석이란
두 특징은 그 어느 것도 샤갈 작품의 완전한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큰 꽃다발과 우울한 어릿광대, 날아다니는 연인들, 환상적인 동물들,
성서의 예언자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이미지들을 묘사한 민속적인
작품들로 말미암아 샤갈은 20세기 파리파의 중요한 전위미술가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환상적인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했는데, 그의 양식은 표현주의나 입체파, 추상미술과 같은
1914년 이전의 운동들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개인적인 성향을 띠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모티프가 지나치게 되풀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특히 걸작들은 현대의 작품들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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