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경영] 좋은 생각도 때론 묵혀둬야
에디슨의 승리와 패배 타이밍 판단할 줄 아는 게 리더의 몫…자기 고집만 피우다간 망해 |
토머스 앨바 에디슨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99%의 땀과 1%의 영감”을 가지고 1100여 개의 발명품을 남겼다. 축음기와 전화기, 활동사진기 등 수많은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인류의 밤을 밝힌 백열전구였다. 사실 전구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 아니었다. 영국인 험프리 데이비가 1806년 두 가닥 철심 끝에 목탄 조각을 붙인 뒤 유리관을 씌운 아크 전등을 만들어냈다. 이 아크 전등은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가로등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전극에 붙인 탄소가 지나친 열로 얼마 못 가 타버리는 바람에 매일 전극을 갈아줘야 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직류와 교류의 숙명적 대결 에디슨은 유리관을 원형으로 만들고 진공상태를 유지한다면 필라멘트가 타지 않고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만 개 가까운 물질을 실험한 끝에 에디슨은 불에 그을린 무명실을 필라멘트로 이용한 백열전구를 만들어냈다. 이 전등은 45시간 동안 문제없이 켤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디슨에게 늘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그의 실패담이 오늘의 주제다. 대표적인 것이 송전 방식이었다.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전등에 불을 밝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소를 세우고 ‘에디슨 제네럴 일렉트릭’이라는 전력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그 회사는 110볼트의 직류 전류를 사용했기 때문에 낮은 전압과 전선 저항에 의한 손실로 발전소에서 2~3마일 정도밖에 송전할 수가 없었다. 송배전이 제대로 되려면 3마일마다 발전소를 만들어야 했다. 이 점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조지 웨스팅하우스였다. 그는 철도용 에어브레이크를 발명해 번 돈으로 자기 이름을 딴 전기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전력공급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선 그는 변압기 관련 특허를 사들였다. 직류 송전 방식을 장거리 송전이 가능한 교류 송전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발전소에서 최초 송전할 때는 전압을 크게 올려 중간 손실을 최소화하고 일반 가정에는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낮추는 방식이다. 마침 그때 에디슨 연구소에서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하던 니콜라 테슬라라는 인물이 있었다. 에디슨에 가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테슬라 역시 수백 건의 특허를 가진 발명가였다. 그는 교류 송전 방식이 더 유용하다고 주장하다 에디슨과 결별한 뒤 스스로 연구소를 차리고 교류 송전에 알맞은 전동기와 변압기 등을 발명했다. 웨스팅하우스는 곧바로 교류 송전용 전동기 특허를 구입하고 교류 송전 사업에 전력투구했다. 오늘날 대부분 이 교류 송전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직류가 좋은가 교류가 좋은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특히 강력한 경쟁자를 맞게 된 에디슨은 고압을 사용하는 교류 송전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떠들어 댔다. 당시 고압선 감전사고가 빈발하던 터라 그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에디슨은 여세를 몰아 경쟁자에게 KO 펀치를 날릴 이벤트를 벌인다. 언론계·학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해 개와 고양이를 고압의 교류 전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얼마 후 뉴욕주가 교수형보다 인도적인 사형 방법을 고심하자 에디슨은 쾌재를 불렀다.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전류로 사형 집행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쓴맛을 본 것은 에디슨이었다. 사형수가 앉은 전기의자에 교류 전류를 흘려 보냈지만 사형수가 단번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웨스팅하우스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198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25만 개의 전등을 켜는 계획에서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을 제치고 최종 낙찰을 받았다. 나이애가라 폭포에 세계 최초의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 역시 웨스팅하우스에게 돌아갔다. 전기 송전 방식을 둘러싼 숙명의 대결에서 교류 전류가 승리를 차지한 것이다. 에디슨은 1931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가 세상과 이별할 때 세상은 교류 전류가 흐르는 백열전구로 어둠을 밝히고 있었지만 사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 백열전구의 추방과 함께 직류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환경 보호가 21세기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면서 에디슨을 승자로 만들어준 백열전구는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퇴출 일보 직전에 있으며 그를 패배자로 만든 직류 전류가 다시 각광받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직류 전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교류 전류의 에너지 낭비가 크기 때문이다. 교류로 송전할 경우 소비되는 전력 외에 전송망에 어느 정도의 전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 이를 무효 전력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부분 소모되고 만다. 또한 전기기기를 오래 사용할 경우 뜨거워지는 것도 전기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바뀌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사용하려면 교류를 직류로 바꿔야 하므로 전자기기마다 전원 장치와 변압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자기기의 부피가 커지는 원인이 된다. 패배하자 회사 팔고 떠난 에디슨 직류 전기로 송전한다면 이런 문제점들이 일거에 해결된다. 전자기기들의 크기와 무게를 줄일 수 있고 전자기기 간에 전력선 통신이 가능해져 전선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변압기가 필요 없으므로 전자기기의 가격이 싸지고 전력 낭비도 줄어든다.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충전기가 필요 없어지고 휴대전화 등을 직접 콘센트에 꽂아 충전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직류를 사용할 경우 국토의 분산·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형 발전소를 지으려면 부지 매입과 송전탑 등을 건설하는 비용이 만만찮아 소규모 발전기를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들 경우 작은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생산·공급한다는 것이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가정에서 직접 직류로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적고 고압이 아니라 안전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소규모 지역 단위로 전력이 생산되기 때문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갖가지 장점 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직류 사용이 현실적 대안으로 적극 고려되고 있다. 특히 태양열 발전이나 연료전지들이 모두 직류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호환성도 높다. 일본에서는 NTT 통신회사가 교환실을, JR 철도회사가 전철을 이미 직류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일부 지역의 직류 송전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하의 에디슨이 땅을 칠 일이다. 에디슨이 주장한 직류 송전 방식은 효율적이며 생산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에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런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들이 동시대인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삶을 마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그러면 곤란하다. 그것은 개인의 불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현실성이 떨어지는 아이디어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기발하더라도 주위 환경이 뒷받침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발을 만들었어도 변발을 하던 청나라 시대에는 팔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에디슨은 교류 송전 방식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채택되자 커다란 손실에도 가차없이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을 팔아 버린다. 당연히 회사명에서 에디슨이라는 이름은 빠진다. 그렇게 남은 이 기업이 바로 종합가전업체 제너럴 일렉트릭이다. 1896년 다우 존스(Dow Jones) 산업지수가 발표한 미국의 12개 우량기업 중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만약 에디슨이 직류 송전을 계속 고집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제너럴 일렉트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훌륭한 생각도 때가 아니면 묵혀둘 줄 아는 지혜, 그것이 곧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아이디어, 묵힐 때는 묵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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