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장도리로 ‘굽은 못’만 뺀다
기업규제·정부조직·부동산 정책 수술…국토균형개발 정책은 발전적 계승
[JOINS_디지털뉴스센터] 2008-01-12 오후 9:51:55 입력
10년 만에 권력이 좌에서 우로 이동했다. 지난 10년 정권은 분배와 평등의 가치를 중시했다. 이명박 정권은 성장과 실용을 앞세운다. 그래서 권력 못지않게 정책의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둥지를 튼 대통령직인수위가 그랜드 디자이너다. 핵심은 경직된 정책들을 친시장주의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특히 기업·수도권 규제, 부동산 관련법, 교육 3불 정책, 정부조직 등이 대표적이다. MB의 대못 뽑기가 시작됐다.
“지나친 독점을 규제하고, 부당 내부거래와 불투명한 경영을 규제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는 규제지만, 전체 경제에서는 규제를 푸는 것이다.”
“재벌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집단소송제나 출자총액제한이라든지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를 외치면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규제 완화가 목적이 아니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 목적이다. 규제 중에는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도 있고 자유를 보장하는 규제도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방송과 TV 토론 등에 나와 언급한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출범 초기 규제 완화를 내걸었다. 그러나 MB가 표방한 기업 규제 완화와는 근본적인 방향과 성격이 달랐다.
이명박 당선인은 “투자 활성화를 위해 모든 기업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부당 내부거래, 불투명 경영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새 정부는 더 이상 기업의 투명성을 담보로 기업을 옥죄는 일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미 투명성을 논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참여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MB는 자유를 보장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사람들’은 좌우파 잣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10년 만에 ‘좌파 정권’에서 ‘우파 정권’으로 권력이 이동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나라당도 대선 때 ‘좌파 정권 10년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념과 중심 세력이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이끈 국정의 핵심 세력이 운동권 출신 ‘386’ 세대라면, 새 정부의 향후 5년은 전문적 지식을 갖춘 ‘475 세대’(50년대에 출생하고 70년대에 학교를 다닌 40대 후반 이후)가 이끌 게 확실하다.
또 평등과 분배의 가치를 중시하는 학자들이 참여정부의 중심 핵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시장주의에 투철한 실용주의자들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정부와 사고 체계가 다른 새로운 인물들이 새 정부로 들어가면, 당연히 국가 정책의 방향은 180도 바뀌게 마련이다. 현상에 대한 진단이 다른데, 처방이 같을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우파 혁명’까지 거론한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기존 정부가 다 잘못했다는 생각은 틀렸다”며 “전 정부에 대한 예의는 지키면서, 고쳐갈 것은 고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겠다는 것이 이 당선인과 인수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권력 인수자와 떠나는 자 사이의 격식일 뿐이다.
새 정부의 핵심 화두는 성장·자율·실용
무엇을 고칠까? 어떤 대못을 뺄까?
이명박 정부의 어젠다를 끌고 갈 핵심 화두는 성장·자율·실용이다. 특히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은 이명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그 동력 엔진은 규제 철폐. ‘규제의 못을 빼겠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들의 규제는 새 시대에는 버려야 할 낡은 틀이라는 게 이 당선인의 생각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 투명성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DJ정부와 참여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재벌 개혁은 없다고 판단했다.
칼자루를 잡은 관료가 기업을 지휘·관리·감독하는 방법은 규제였다. 인수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설된 경제 관련 규제는 1102건이다. 폐지 또는 완화된 규제 468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새 정부는 수도권 규제, 기업 규제, 부동산 규제 등 모든 규제를 점차 풀면서 일단 경제부터 살리겠다는 복안이다. 기업 규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금산분리의 대못’도 뽑힐 게 확실해졌다. 이에 따라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는 5년 내내 부동산 때문에 속을 썩였다. 그래서 내놓은 게 세금으로 돈 줄을 죄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별로 안정되지 않은 채 ‘세금 폭탄’에 대한 분노만 하늘을 찔렀다. 이번 대선 승패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도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도 손을 댈 것이 틀림없다. 인수위 측은 ‘수도권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은 공급 확대 없이 세금 중과에 의한 수요 억제책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시장이 왜곡된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는 안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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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때 일어난 IMF를 DJ정부 때 막느라 애썼고, DJ정부 때 남발한 무분별한 카드 정책의 폐해는 노무현 정부에 고스란히 짐으로 남겨졌다. 임기 내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길게 보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 종합부동산세를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진통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로 거둔 돈을 각 지방에 교부세로 나눠 주도록 대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방정부의 반발을 막기 위한 대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종부세나 양도소득세를 깎아 주려면 관련 법을 고쳐야 한다. 한나라당이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조직은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이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다. 인수위의 첫 업무도 정부조직 개편이다. 이르면 1월 10일 안팎에 윤곽이 드러난다. 원칙은 기능 중심의 효율적 정부 조직이다.
상당수 부처가 통폐합되거나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무원 감축 얘기는 쏙 들어갔다. 조직을 줄이면 공무원 수도 줄여야 하는데 간단치 않다. 참여정부에서 워낙 많이 공무원을 늘려놨기(9만8000여 명)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공기업도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2002년 10월 담배인삼공사(현 KT&G) 이후 멈췄던 공기업 민영화가 다시 닻을 올린다. 인수위 측은 “총선 이후 단계별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기본 원칙은 ‘시장이 잘하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혁신한다’는 것이다. 민영화보다는 내부 개혁에 초점을 맞췄던 참여정부와는 입장 자체가 다르다. 현 정부가 제출해 지난 4월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운영법’도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정책과 관련해서는 아직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공약 자체가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새 정부의 가장 고민거리는 비정규직 보호법이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300인 이상 사업장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근무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못박아놨다. 올 7월 1일부터는 법이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인수위 측은 이 법에 손을 대야 할지에 대해 답을 못 내고 있다. 다만 이명박 당선인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할 때는 임금을 90% 가까이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소해가는 쪽에 일단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워낙 독소조항이 많기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법은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참여정부의 핵심 어젠다 중 하나가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도 원칙에는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큰 훼손 없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당선인은 “혁신도시 건설사업은 어느 정권이 들어오더라도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참여정부는 다음 정권이 바꾸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하자”며 서둘러 삽질을 했다. 다시 덮으려 해도 덮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도시의 경우는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혁신도시와 함께, 큰 틀에서 광역경제권을 형성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입장으로 분석된다.
참여정부에서 큰 성과를 거둔 남북 경협사업은 상호주의 원칙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속도가 조절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위 측은 “북핵 폐기라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지 않으면 남북경협 진척도 어렵다”는 생각이다. 가장 선명한 정책은 남성욱 고려대 교수(인수위 자문위원)가 밝힌 ‘4단계 분류이행론’에서 엿볼 수 있다.
남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핵 문제 진전을 지켜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쉽게 말하면 무조건 퍼주기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당선인은 “북핵이 해결되고,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내에 3000달러가 되도록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조건 확 바꾼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인수위를 흔히 ‘점령군’이라고 부른다. ‘좌’쪽에 가까운 지난 10년 정권은 석양을 맞고 있다. 2월 25일이 되면 새 해가 뜨고, 지는 해는 서해로 사라진다. 새 정부는 ‘바꿔보자’는 기대를 안고 출발한다. 당연히 ‘확 바꿔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새 정부의 ‘대못 뽑기’가 무원칙해서는 곤란하다. 지난 정권의 정책들 중 국민 합의를 얻었거나,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들은 이어가고 수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한다. 5년이 아니라 긴 역사를 봐야 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일어난 IMF를 DJ정부 때 막느라 애썼고, DJ정부 때 남발한 무분별한 카드 정책의 폐해는 노무현 정부에 고스란히 짐으로 남겨졌다. 임기 내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길게 보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개혁안
◇기업규제 기업규제 대폭 완화, 금산분리 완화 확정,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공정거래법 경쟁촉진법으로 전환
◇부동산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 종부세 경감, 주택거래세 1% 단계적 인하, 투기용에만 양도세 중과, 분양가 20% 인하, 신도시보다 뉴타운 개발, 주택대출 실수요자 허용
◇정부조직 10~14부처로 통폐합, 정부 직속 위원회 상당수 폐지, 총리실 기능 축소, 교육부 사실상 해체, 공무원 감축 없이 임금동결
◇국토균형 균형발전을 위한 광역경제권 형성, 기업도시 개발에 민간기업 자율성 강화
◇공기업 개혁 단계별 민영화 착수, 공공기업 운영법 개정. 싱가포르식 공기업 경영 검토, 국책은행 부분별 민영화 추진, 민영화와 낙하산 인사 금지
◇비정규직 비정규직법 개정 검토, 동일노동·동일임금에 상당 부분 동의,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중점,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대북 경협 상호주의 원칙, 한반도 비핵화 최우선, 북핵문제 해결 위해 한·미 협력 강조 |
박미숙·김태윤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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