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꼴찌→司試 18등.. 고교 야구선수의 '14년 집념'
이기훈 기자 입력 2017.05.08. 03:14
"스무 살 때까지 알파벳 소문자 피(p)와 큐(q)도 구분 못 했던 사람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게 남 얘기였다면 저도 안 믿었을 겁니다(웃음)."
사법연수생 장권수(33)씨의 관심은 고교 졸업 때까지 오직 야구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그의 꿈은 LG트윈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유지현·김재현·서용빈처럼 뛰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야구부 코치, 주변 사람 모두가 장씨는 야구 이외의 다른 것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지 못했다. 프로야구 팀 지명을 받는 데 가장 중요한 고3 때 그의 타율은 2할대에 머물렀고, 키 176㎝의 체격 조건도 프로야구 구단의 부름을 받기엔 너무 평범했던 것이다. 2002년 7월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광문고 3학년 3루수 장권수'라는 이름을 부른 구단은 없었다.
야구 글러브를 놓으면서 그는 꿈을 잃었다. 그해 가을 입시 학원에서 치른 수능 모의고사 성적은 400점 만점에 70점,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다. 장씨는 "남들이 꿈을 꾸는 스무 살에 나는 꿈을 잃은 청년이었다"며 "10년간 해오던 야구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별했다"고 했다.
지난 4일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장씨의 손에는 야구 글러브 대신 법전(法典)이 들려 있었다. 작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의 성적은 109명 중 18등. 고교 졸업 때 전교 꼴찌였던 장씨가 인생 역전 홈런을 친 것이다. 장씨는 고교 졸업 후 1년간 공부에 매달린 끝에 2004년 추가 합격자로 가톨릭대학 언어문화학부에 들어갔다. 중간에 법학으로 전공을 바꿔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돈이 없어 독학으로 사시에 도전한 지 9년 만에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장씨는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야구가 아닌 공부에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봉황대기 전국 대회 2회전. 야구 선수로서 그가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뒤 주저앉은 아들에게 부모님은 "우리가 네 뒷바라지를 못 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앞에서 장씨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장씨는 부모의 권유로 그해 겨울 노량진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아버지 장순해(54)씨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운동 그만두고 나쁜 길로 빠질까 봐 아들을 등 떠밀어 노량진으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입시 학원 강사는 "그동안 공부를 안 해서 머리는 맑으니 열심히 하면 대학은 갈 수 있겠다"고 격려 아닌 격려를 했다. 첫 수능 모의고사에서 그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모든 문제의 답을 3번으로 찍었더니 400점 만점에 70점이 약간 넘었다.
그는 일단 중학교 수학 문제집부터 샀다. 유일한 공부 밑천은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었다. 매일 새벽 서울 대림동 집에서 지하철 첫차를 타고 학원에 갔다. 매일 밤 10시 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 지하철에선 영어 단어장을 꺼냈고, 화장실에 갈 땐 수학 노트를 들고 갔다. 2003년 여름 모의고사 점수 250점을 넘겼다. 장씨는 "머릿속이 백지(白紙)여서 그런지 영어 단어 하나만 외워도 점수가 오르더라"고 말했다. 그해 가을 수능시험에서 서울 시내 대학에 진학 가능한 수준인 300점을 받았다. 하지만 고교 내신 성적이 전교 356등으로 꼴찌였던 게 발목을 잡았다. 3군데 대학에서 낙방하고 서울 가톨릭대 언어문화학부에 추가 합격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서 노는 법부터 배우는 또래와 달리 장씨는 고전(古典) 읽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군대에 가서도 플라톤의 대화 편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나오면 노트에 정리했다. 휴가 나오면 교수를 찾아가 노트에 적은 걸 질문했다. 그는 암기만 있을 뿐 질문이 사라진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겐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묻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전역 후 법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가 매일 연구실을 찾아와 모르는 걸 물어보는 장씨의 모습을 보고 사법시험을 권했다. 2008년 본격적인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 과목에 20만~30만원 하는 고시 학원 수업을 들을 형편이 안 돼서 독학으로 2년간 공부했다. 한 달 용돈 30만원으로 책값과 생활비까지 해결했다.
2010년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야구하던 시절처럼 삭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책상 위에 초시계를 놓고 종일 책과 씨름했지만 다음해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야구도, 고시도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없어 취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결국 2013년 2월 장씨는 직업도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가장 절망에 빠졌을 때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2014년 취업을 준비하며 '마음을 달래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간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증권사에 다니던 지금의 아내 윤정미(31)씨를 만났다. 장씨는 고시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의 고민을 들은 윤씨가 "성실하니, 뭘 하든 성공할 것"이라며 응원했다. 아내의 격려로 장씨는 다시 책상에 초시계를 올려놓고 법전을 펼쳤다. 혼자서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노트에 정리해뒀다 한번씩 모교(가톨릭대) 은사였던 고려대 로스쿨 홍영기 교수를 찾아갔다. 홍 교수는 "법 철학을 유난히 좋아하고 고시 공부할 때도 한 문장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꼭 찾아와서 물을 정도로 집요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에 사시 1차를 통과했고, 작년 10월 2차에 붙었다.
장씨는 야구를 하며 몸에 밴 규칙적 생활 습관과 집중력이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야구하다 그만둔 친구 중엔 조폭이나 불법 도박 사업 등에 빠진 이도 있다고 한다. 장씨는 "야구를 하는 10년 동안 다른 삶에 대해서 알려준 사람도, 경험할 기회도 없었다"며 "유소년 운동선수들이 다른 적성도 알아볼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도 초시계를 가져갔다는 장씨는 "법조인이 되면 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 더 무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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