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 시

어느 봄날의 기억

forever1 2017. 10. 27. 13:02



어느 봄날의 기억

 

그해 뉴욕 시의 겨울은 4월이 돼도 추위가 누그러들 줄 몰랐다. 혼자 사는 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다. 마침내 추위가 가시고 봄이 성큼 다가온 어는 날, 나는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나왔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이 한없이 따사로웠다.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날 불렀다. 그는 내가 가는 곳까지 차로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걸었다. 모퉁이에 도착하자 습관대로 걸음을 멈췄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올 때 사람들과 같이 길을 건너기 위해서였다. 차 소리가 멈춘 지 꽤 오래됐는데도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봄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강하면서도 듣기 좋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쾌활한 분이신 것 같군요. 제가 함께 길을 건너도 될까요?”

그의 정중한 물음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끄덕이며 라고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우리는 함께 천천히 길을 건너면서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도 했다. 길을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자동차 결적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 신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 쪽으로 돌아서서 감사 인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선 제가 얼마나감사한지 모르실겁니다. 전 같은 장님을 도와 길을 건너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봄날의 기억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기적들>, 살로트 웨크슬러 외,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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