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상훈 경북대 연구교수 |
662년 1월의 일이다. 당나라의 소정방이 고구려의 평양을 포위하고 있다가 식량이 떨어졌다. 당군은 연합국인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결국 신라에는 평양으로 군량을 수송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문무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모두 말하기를 “깊이 적의 땅에 들어가 군량을 수송하는 일은 형세를 보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문무왕은 근심에 싸인 채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였다.
이 때 김유신이 앞으로 나아가 답하였다. “신이 과분하게 은혜를 입고 욕되게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으니, 나라의 일이라면 죽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곧 늙은 신하가 절개를 다하는 날이오니, 적국을 향해 나아가 소정방 장군의 뜻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문무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유신에게 다가왔다. 김유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공公과 같은 어진 보필輔弼을 얻었으니 근심이 없소이다. 이번 싸움에 있어 목적하는 바를 그르치지 않는다면, 공의 공덕功德을 언젠들 잊을 수 있으리요.”
드디어 김유신의 군량수송 부대가 편성되어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1월 23일, 신라군은 고구려와의 국경인 임진강에 도달했다. 이 때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먼저 배에 오르지 못했다.
김유신은 “제군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 한다면 어찌 여기에 왔는가?”라고 하면서, 스스로 먼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이를 본 병사들이 김유신을 따라 강을 건너 고구려 땅으로 들어갔다. 김유신이 장수로서 솔선수범을 보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감으로써, 부하들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신뢰감을 높일 수 있었다.
신라군은 고구려 영토로 진입하였지만, 날씨가 추워 동사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다시 사기는 저하되고 두려움이 커져 갔다. 김유신이 다시 나섰다. “적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가게 될 것이요, 만일 적을 무서워한다면 어찌 사로잡힘을 면할 수가 있으랴? 마땅히 마음을 하나로 하고 힘을 합쳐 한 사람이 백 명을 상대할 수 있기를 귀관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확고한 눈빛과 차분한 음성으로 여러 병사들을 다독였다.
병사들은 모두 “원컨대 장군의 명을 받들어, 감히 살기를 꾀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사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리더로서 자기 확신이 없으면 부하들을 이끌 수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투 앞에서 누구나 두려울 수밖에 없다. 리더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할 때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의 역량이 드러나는 법이다.
양파티브이뉴스 기자 dgpost20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