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1인 방송'.. 투신 장면까지 생중계
부산/권경훈 기자 입력 2018.03.08. 03:08
일부 시청자는 댓글로 실행 재촉
전문가들 "자살·죽음 콘텐츠를 생산하고 즐기는 사람 있다는건
우리 사회 병든 단면 보여주는 것"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원칙이다. 다른 사건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병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보도의 공익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부산에서 발생한 인터넷 방송 자살 생중계 사건이 그런 사례다. 비뚤어진 관음증이 극대화된 우리 사회의 병든 단면을 보여준다.
◇자살을 생중계로 본 한국 사회
지난 5일 오전 11시 부산 사상구 한 원룸. 한 인터넷 방송사의 BJ(인터넷 방송 진행자) A(여·35)씨가 방송을 시작했다. 접속한 시청자는 20여 명. A씨는 "인터넷 방송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3월 7일이 뭔지 아냐"며 '이틀 뒤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시청자 한 명이 A씨를 조롱하듯 '(지금) 뛰어내리라'는 댓글을 올렸다. A씨는 소주를 곁들여 도시락을 먹고 난 후 "나, 간다"며 일어섰다. "엄마 없이 어떻게 살겠느냐"며 반려견 2마리 중 1마리를 8층 원룸 창밖으로 던졌다. 곧이어 나머지 반려견 1마리를 안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아악~" 하는 A씨의 비명이 방송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화면 각도상 투신하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A씨는 1시간 만에 숨졌다. 반려견 2마리 중 1마리는 죽고 1마리는 크게 다쳤다.
7일 오후 부산 수영구의 A씨 장례식장에는 유족과 동료 BJ, 팬 등 10여 명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과 유족에 따르면 A씨는 5년 전 방송을 시작했다. 해당 인터넷 방송사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BJ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시청자가 줄어들자 주변에 우울증을 토로했다고 한다. 유족 중 한 명은 "인기가 떨어졌을 때는 악플 하나도 치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동료 BJ들은 "열심히 방송을 해 왔던 동료"라며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해당 인터넷 방송사로부터 당시 녹화 영상을 제출받아 분석하고 있다.
◇낮아진 자존감 과다하게 보상받으려 해
전문가들은 삐뚤어진 인정 욕구를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로 꼽는다. 10~30대 젊은 세대가 낮아진 자존감을 과다하게 보상받으려다 자살 생중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폭력물이나 음란물이 그 대상이었지만, 관음적 방송의 수위가 높아지며 극단적으로 자살 생중계까지 갔다는 분석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누군가의 은밀한 부분을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의 치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나 권력을 가졌다는 쾌감을 들게 한다"며 "열패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 중 일부가 이런 방송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1인 미디어는 이 같은 양상을 강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방송 진행자와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동안 진행자와 시청자는 서로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쓴다. 진행자는 시청자의 이름이나 댓글을 읽어주며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시청자는 가상 화폐인 '별풍선'을 쏴주고 이목을 끌려고 한다. 이런 과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가학적인 행위와 댓글만 남는다는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시청자가 줄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A씨가 자살하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듣고 싶었던 말은 자신을 말리는 회유나 독려였을 것"이라며 "인간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오직 자극만 남았기 때문에 시청자는 자살을 부추겼고, A씨에게 남은 건 극단적인 선택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중의 욕구에 맞춰주는 방송인들이 갈수록 자해적이고 과도한 시도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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