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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됐다던 한·미FTA .. 미, 잇단 뒤통수

forever1 2018. 4. 2. 07:26



잘 됐다던 한·미FTA .. 미, 잇단 뒤통수

하남현 입력 2018.04.02. 00:03 수정 2018.04.02. 06:33


미, 타결 발표 뒤 날마다 다른 얘기
환율 이어 미국산 사과·배 수입 거론
트럼프, 북한·통상 계속 연계할 듯
서명 전까지 한국 전략적 대비해야

사실상 매듭이 지어진 거로 여겨졌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 관련 잇따라 ‘다른 얘기’를 내놓고 있어서다.

지난달 26일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타결을 발표하면서 “농업 분야 ‘레드라인’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농업 시장을 추가로 열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현재 수입이 금지된 (미국산)사과와 배에 대한 (한국)시장 접근을 요청했다”라며 “이들 과일 수입 허용을 위해 한국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농업 분야에서도 진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농업 시장 개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뿐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에서 연설하며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그것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발언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한·미 FTA 개정 문제를 북·미 대화와 연계하고 ‘한국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잘해달라’라는 메시지를 준 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미 FTA 개정 협상과 연계해 환율 관련 양국의 합의가 있었다는 미국 측의 주장도 논란이 되고 있다. USTR은 ‘미국의 새 무역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 자료에서 “(미국 재무부와 한국 기획재정부가 협상을 통해)경쟁적 평가 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를 마무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환율 협의는 별개”라며 “환율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고 적극 반박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환율 등을 한·미 FTA와 엮으려는 모양새에 대해 한국 정부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연계 전략’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이에 대비하지 않고 협상 결과에 대해 자화자찬만 했다는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지난달 26일 한·미 FTA 개정 및 철강 관세 관련 협상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꿀릴 것 없는 협상 판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자동차 시장 등을 추가 개방하는 등 일부 양보가 있었지만, 철강 관세 면제국 지위를 획득하는 등 만족할만한 협상이었다는 자평의 의미가 담겼다.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독하게 협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협상 결과에 대해 호평을 내놨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협상을 끝내고 개선 장군처럼 무용담을 늘어놓았다”라며 “최악을 피한 차악을 선택한 것이지 차선이 아니며 처음부터 끝까지 끌려간 협상”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한·미 FTA 관련 원칙적인 타결을 선언했을 뿐 최종 서명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끝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주문이다. 양국 통상 장관의 공동 선언문이 나오긴 했지만, 개정 협정문 작성과 최종 서명, 양국의 국회 동의 등 한·미 FTA 개정의 마무리에 이르기까진 아직 갈 길이 남아서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금까지 행보를 볼 때 외교·안보, 환율 문제 등을 통상 정책과 연계하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한·미간 이견이 있을 경우 남은 한·미 FTA 개정 절차에도 영향을 미칠 수 만큼 통상 당국을 비롯한 정부는 전략적 대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