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간 엄마 몰래 쫓아간 막내는 41년째 돌아오지 않았다
방극렬 기자 입력 2018.05.25. 05:06
부산 연산동 친정집 근처서 실종… 저녁 찬거리 사러 나간 게 마지막
아이 아빠는 우울증 앓다가 사망… 오늘도 빛바랜 사진 들고 수소문…
1977년 봄 임경자(75)씨는 부산 동래구 연산동 친정집에 5살 난 딸 이경미양을 맡기고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왔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딸에게 “할머니랑 같이 잘 있어”라고 타이른 후였다. 그러나 이양은 할머니에게 엄마를 따라가겠다 말하고 엄마 뒤를 몰래 쫓았다. 가족들이 본 이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임씨는 세계실종아동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옷차림을 또렷이 기억했다. “단발에 핀 하나 꽂고 흰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 조끼랑 바지를 입었어요. 자주 입던 옷인데….”
집에 돌아온 임씨는 딸이 사라진 것을 알고 5분 거리의 시장으로 다시 뛰어갔다. 그러나 이양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버지 이원길씨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누군가 경미를 흰색 차에 태워갔다”는 목격담이 있었지만 그 이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부모는 두 아들을 친척집에 맡긴 채 생계를 뒤로하고 막내딸을 찾았다. 이들은 1t 트럭에 딸이 그려진 전단지를 가득 싣고 5년간 전국을 누볐다. 시골 동네의 작은 반상회에 참석해 “이런 아이 본 적 없느냐”고 물었다.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납치해간다는 소문을 듣고 입양기관 수십 곳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검찰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변사자 명단에 딸이 있는지 확인했고, 방송국의 미아 찾기 프로그램에 사연도 보냈다.
가족의 슬픔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80년대 초 충주에서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임씨가 직접 가 만났지만 제보자는 “돈이 궁하니 사례를 해주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급한 마음에 수차례 당시는 큰돈이었던 수백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돈만 받고 사라졌다.
경찰의 어설픈 조치에 크게 실망한 적도 있다. 이양의 큰오빠 이경호(51)씨는 2000년대 초 부산의 한 경찰서로부터 여동생 위치를 확인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갔다. 찾아간 주소지에는 동사무소가 있었다. 이양의 주민등록이 말소되며 주소지가 이전된 것이었다. 이씨는 “경찰에서 연락이 왔기에 당연히 찾은 줄 알았다. 너무 허탈했다”고 털어놨다.
가정은 온전히 유지되기 어려웠다. 애지중지하던 딸을 잃은 아버지는 20여년을 가족과 따로 살았다. 오빠 이씨는 “아버지는 경미를 잃고 어디에도 마음을 못 붙였다”며 “남아있는 자식들이 밉고 어머니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2003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전국을 돌아다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쓰러져 사경을 헤맸다. 간신히 회복했지만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씨는 “어머니는 막내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로운 것 같다”고 했다.
41년간의 노력에도 동생을 찾지 못했지만 이씨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나쁜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며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건 동생 찾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음 달에도 입양기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대조할 계획이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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