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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 52시간' 못하는데.. 누구에게 문의하죠?

forever1 2018. 6. 6. 09:16



우리는 '주 52시간' 못하는데.. 누구에게 문의하죠?

권기석 김혜림 정건희 기자, 입력 2018.06.06. 05:06

'근무시간 단축' 한 달도 안남았는데.. 가이드라인 없어 혼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기업들은 업종의 특수성과 업체별 인력 사정을 고려할 때 특정 업무 종사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하지만 정부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2∼3년마다 실시하는 ‘대정비 공사’가 근로시간 준수의 최대 걸림돌이다. 대정비 공사는 원유 정제 설비 가동을 멈추고 보수하는 작업이다. 대개 1∼2개월이 소요되는데 공사 기간이 짧을수록 손실이 줄어들어 이 기간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업계는 주 52시간으로 근무가 단축되면 공사기간이 길어져 손실이 불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3개월 내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한다고 해도 법 준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5일 “설비 가동을 못하면 하루 수백억원씩 손실이 생긴다”며 “2∼3년마다 한 차례 하는 일이어서 그 기간만 사람을 채용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업무 가운데 ‘해상 시운전’은 법정 근로시간 준수가 불가능하다며 걱정하고 있다. 해상 시운전은 건조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검증하는 작업이다. 배 안의 근무자는 수주∼수개월간 24시간 근무 대기 상태가 된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정부 대책이 없으면 알면서도 법 위반을 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계절 성수기에 맞춰 생산량을 확대해야 하는 식품제조업계도 고민이 크다. 지난 4월부터 24시간 풀가동을 하고 있는 빙과류 업체들은 다음 달 3교대 체제 도입으로 인력을 채용할 예정인데 이 인력을 비성수기에 어떻게 운용할지 걱정이다. 이에 인력 충원보다 자동화 설비 확충에 나서는 업체도 있다. 냉동만두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5일 “성수기마다 단기 인력을 충원하기보다 자동화설비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업계가 한목소리로 원하는 것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범위를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주당 평균 52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2주 내에서 운용이 가능하고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로 확대할 수 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연구개발 조직은 신제품 출시 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서 “탄력근로 시간제 범위를 6개월이나 1년으로 늘리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는 법 개정 사안이지만 여야는 지난 2월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하면서 2022년 12월로 문제 개선을 미뤄둔 상태다.

근로시간 단축과 연관이 있는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네이버, 위메프 등 일부 기업이 포괄임금 폐지 방침을 밝혔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7월 이후 연장근로에 당장 적용해야 하는데 기준이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과정에서 예상되는 혼란을 가정해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시범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시행하고 있지만 해외출장 시 이동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할지 등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기업은 거래처 직원과의 식사시간이나 사내 회식, 워크숍 등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할지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지만 보편적 기준이 없어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직접 표출하지 못하고 협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질의응답(Q&A) 자료를 만들고 근로시간 단축 기업 컨설팅 인력도 증원하고 있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고용부는 다음주 Q&A 자료 최종안을 만든 뒤 사업장에 배포할 예정이다. 시행 2주 전에서야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셈이다.

Q&A 자료에는 현장에서 혼선을 겪을 수 있는 사례들과 이에 대한 해법이 담긴다. 고용부는 노사발전재단이 운영하는 근로시간 단축 컨설팅 프로그램에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인력을 증원한다. 앞으로 7월까지 남은 기간 정부 차원의 컨설팅을 100% 가동한다고 해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괄임금제 폐지 가이드라인은 이달 말 나올 전망이다.

권기석 김혜림 정건희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