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법 8월 시행 앞두고.. 대학 '조용한 해고' 시작
박세미 기자 입력 2019.01.16. 03:05
강사들은 파업·천막 농성 반발, 청와대 앞에서 시위 벌이기도.. 교육부는 법 통과 후 수수방관
대구대가 올 1학기부터 시간강사 400여 명 대부분에게 강의 배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는 8월 '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전임교원이 맡는 강의를 매 학기 9학점→12학점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학기 단위로 계약하는 시간강사에겐 별도의 '해고 통보'가 없다. 대학에서 강의를 안 주면 그게 곧 해고 통보다. 대구대가 전임 교원 강의를 늘리면 시간강사는 자동으로 일자리를 잃는다.
조용한 대량 해고가 전국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는 올해 1학기부터 시간강사 4명이 맡던 강의를 전부 없애고 전임교원이 대신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양대 관계자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인건비 등 재정 부담 등으로 일부 단과대에서 선제적으로 강사 해고를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시간강사법 때문에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거란 우려는 작년부터 나왔다. 그런 우려가 이제 현실이 됐다.
◇법과 현실이 따로 갔다
시간강사법의 핵심은 강사의 임용 기간을 최대 3년까지 보장하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며, 퇴직금을 주는 것이다. 정부가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만들었지만, 대학 입장에선 안 그래도 등록금이 11년째 동결된 판에 추가 인건비 부담이 생긴다.
지난해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는 시간강사 7만6164명에게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4대 보험 혜택을 모두 주는 데 필요한 비용이 2300억~3300억원이라고 추정했다. 대학별로 나누면 수십억원씩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별로 시간강사가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르는데, 무슨 수로 수십억원을 더 쓰겠느냐"며 "법이 시행되는 올 8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조용한 해고'가 대규모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학교무협의회 관계자는 "현행법은 강사에게 실제 강의가 있든 없든, 방학이든 아니든 무조건 임금을 주라는 것이라 대학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사들은 조직적인 반발에 나서고 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대학원생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강사제도개선 공동대책위원회'가 15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사법 시행을 방해하는 대학들에 정부가 책임을 묻고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전국 대학 중 처음으로 부산대 시간강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대학 당국과 합의해 18일 만에 파업을 풀었지만, '8월까지는 대량 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데 불과해 다시 갈등이 불붙을 위험이 있다. 이달부터는 영남대 시간강사들이 대학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이들은 "대학이 시간강사 370여 명 중 200여 명에게 아직 강의를 배정하지 않고 있다"며 총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 "방학 4개월 중 1개월만 월급 줘라"
교육부는 올해 시간강사법 예산으로 288억원을 편성해 사립대에 217억원, 국립대에 71억원을 대주기로 했다. 정부가 현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법을 만들었다가, 나랏돈으로 강사 월급을 주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하지만 이 돈은 시간강사 7만여 명을 법대로 대우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2300억~3300억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 연말 각 대학들에 "방학 중 임금은 1년에 약 4주 치만 인정하면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방학 기간 4개월 치 임금을 다 주기 버거우면, 성적 채점·입력에 1주일, 개학 전 수업 준비에 1주일씩 여름·겨울방학 합쳐 총 4주만 인정해주라는 것이다. 그 정도면 현재 편성된 288억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 테니, 강사를 자르지 말라는 얘기다.
대학의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법이 시행되면 강사들이 방학 중 임금 4개월 치를 모두 요구할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교육부가 1개월 치를 부담한다 해도 나머지 3개월은 대학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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