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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 방식부터 자동차의 역사를 쓰다

forever1 2019. 12. 30. 21:26



컨베이어 벨트 방식부터 자동차의 역사를 쓰다




포드 엠블럼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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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영입해 기업 체질 대수술, 미 빅3 중 가장 먼저 위기 탈출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 이사회 회장은 2012년 5월 22일 미국 미시간 주 디어본 시 포드본사에서 경축 행사를 열었다. 그는 이날 “타원형의 푸른색 포드 로고는 우리의 유산”이라며 “내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말로 감격한 마음을 전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자동차 왕국 포드가 이날 그동안 담보로 잡혔던 포드 로고를 되찾은 것이다.

포드는 경영 악화로 2006년 은행에서 230억 달러를 긴급 대출받아 파산 위기를 넘겼다. 로고와 미국 사업장, 알토란 같이 흑자를 내던 F-150 픽업트럭 및 머스탱 스포츠카 사업을 담보로 잡혔다.

금융 채권단은 돈을 빌려주면서 3대 신용평가 회사 가운데 두 곳에서 투자 등급을 회복해야 담보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마침내 피치와 무디스가 2012년 5월 잇따라 포드에 투자 적격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당시 미국 1위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투자 부적격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벤츠가 신기술과 고급차의 역사라면 포드는 자동차 역사 그 자체다. 20세기 초반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미국적인 차를 만들어왔다. 포드는 실용적이고 편안하다. 트렁크와 스위치는 큼지막하고 시트는 푹신하다. 장거리 여행에 용이하도록 대형 엔진과 대용량 에어컨을 달았다.

미국 차의 가장 큰 특징은 ‘편안함’이다. ‘소퍼 드리븐(운전기사를 두고 뒷자리에 타는)’ 차라면 미국 차의 쓰임새가 좋다. 지난해 단종된 포드 링컨 타운카가 대표적이다. 길이가 5미터가 넘는데다 4.6L V8각주1) 엔진을 달아 연비는 나쁘지만 승차감 하나는 기막히다. 픽업트럭용 강철 프레임 차체를 썼는데도 서스펜션각주2) 이 매우 부드럽다.

포드의 승차감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장모는 가족여행을 할 때면 늘 뒷좌석 가운데에 앉아 내가 운전을 잘하는지 ‘감시’한다. 또 세상 풍경이 궁금해 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장모가 2003년 링컨 타운카로 여행했을 때는 어찌나 승차감이 편안했는지 처음으로 차 안에서 주무셨다.

링컨 타운카는 고속이라고 해봐야 시속 120킬로미터가 제격이다. 달리면서 브레이크는 서서히 나눠 밟아야 부드럽게 선다. 뒷좌석에서 살짝 창문을 열고 궁금한 눈빛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재미를 즐기기에는 이런 미국차만 한 것이 없다. 대신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다. 조립 품질이 엉성해 범퍼와 차체 사이에 엄지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갈 만한 틈새(단차)가 여럿 보일 때도 있다. (적어도 2009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그렇다고 2013년 말썽 많았던 H사의 ‘水타페’처럼 물이 새거나 하는 큰 결함은 없다.

디트로이트 디어본에 있는 포드 박물관에 가면 자동차를 통해 인간의 생활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대중차 시대를 연 ‘모델 T’부터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타던 ‘49년형 머큐리’까지 200여 대의 차량이 전시돼 있다. 내 눈길을 끈 차는 소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1930년대 캠핑카다. 그 시절에 포드는 취사시설이 달린 캠핑카를 판매했다.

요즘 포드를 보면 제대로 정신을 차린 듯싶다. 출시와 함께 포드의 대변혁을 예고한 SUV 이스케이프와 세단각주3) 퓨전에 달린 포드 로고를 가리고 ‘어떤 브랜드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독일차나 한국차라고 이야기한다. 섹시한 디자인뿐 아니라 인테리어 소재도 고급스러워졌다. 특히 신형 퓨전은 2억 원대 에스턴 마틴을 닮았다. 아쉬운 것은 미국 차 특유의 푹신한 승차감이 사라진 점이다. 유럽차처럼 핸들링에 주력한 셈이다.

포드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다. 자동차 기술자였던 헨리 포드는 1896년, 자전거 바퀴에 2기통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고 사륜마차의 차대를 얹었다. 처음 만든 자동차였다. 그는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예감하고 1903년 6월 디트로이트에서 11명의 직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연매출 200조 원 포드 그룹의 시작이다.

포드에 관한 모든 것이 자동차의 역사다. 사진은 미시간 주 디어본에 있는 포드 본사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08년, 대중차의 기념비인 ‘모델 T’가 나온다. 4기통 2.9L 엔진을 달고 20마력각주4) 에 최고 시속은 68킬로미터를 냈다. 놀라운 점은 가격이다. 당시 경쟁 차는 2,000달러가 넘었는데 T는 825달러였다. 평균 근로자 6개월치 월급 수준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 덕분이었다.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대폭 낮췄고, 이 덕분에 자동차 시장은 커졌다. 경영학자들은 이를 ‘포디즘(Fordisim)’이라고 명명해 가르치고 있다. 1924년이 되자 미국에서만 1,000만 대의 T가 도로를 메웠다. 당시 미국에서 등록된 차의 절반이었다.

1908년에 출시된 ‘모델 T’는 당시 대중차 시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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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1922년 링컨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고급차 시장에 진출했다. 포드의 명차라는 링컨 콘티넨털의 토대다. 헨리 포드의 장남인 에드셀 포드가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제작한 대형 세단이었다. 이후 콘티넨털은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로 명성을 날렸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보수적인 부자들의 차’로 통했다.

자유분방한 미국 청년 문화의 아이콘 머스탱(mustang)은 1964년에 출시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1가구에 차 한 대를 넘어 성인 1인당 차 한 대씩을 소유하는 세컨드카 개념이 확산되고 있었다. 포드 상품 담당 임원이던 리 아이어코카(훗날 크라이슬러 회장이 된다)는 생애 첫 차를 구입하는 대학생을 겨냥해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과 구매력에 맞춰 소형 스포츠카를 제작했다. 사실 스포츠카와 비슷하게 생긴 스포츠 루킹카다.

머스탱은 야생마 중 작은 조랑말(pony)에 비유되면서 ‘포니 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디자인도 젊은이들의 기호품인 코카콜라 병처럼 곡선을 많이 썼다. 젊은이가 있는 곳에는 머스탱이 늘 따라다녔다. 머스탱이 대박 나자 (GM)과 크라이슬러에서도 비슷한 소형 스포츠카를 내놨다. 크고 비싸서 레이스에서나 볼 수 있던 스포츠카가 가정의 애마가 된 것이다. 이후 머스탱은 진화를 거듭해 500마력 이상 출력을 내는 미국 머슬카(고출력 차)의 상징이 됐다.

1964년에 출시된 미국 청년 문화의 아이콘 ‘머스탱’

사진은 2012년 출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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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미국에서는 GM과 포드의 조직문화가 일본이나 독일 업체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사무실에 뱀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이야기였다. 오너가 없고 명문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 득세하는 GM은 뱀을 잡기 위해 먼저 회의를 한다. 이후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안전하게 뱀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뱀을 잡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를 대비해 보험에 든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풍토를 비꼰 것이다.

포드는 창업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회사다.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형적 톱다운 조직문화다. 대신 조직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경직된 면이 있다. 포드는 우선 실무자들이 뱀을 어떻게 잡을지 회의를 열고 그 결과를 간부에게 보고한다. 간부들은 또 회의를 하고 그 결과를 경영진에 보고한 뒤 명령을 기다린다. 이윽고 지시가 떨어지면 신속히 움직인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이런 조직을 바꾸고자 빌 포드 회장이 칼을 빼들었다. 그 일환으로 보잉 출신 앨런 멀럴리를 영입했다. 멀럴리는 우선 ‘회의로 입사해서 회의로 퇴사한다’는 포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간만 끌고 능률을 저하시키는 ‘회의를 위한 회의’를 근절했다. 부서별로 1~2년씩 근무하고 옮기는 순환보직 제도를 없애 전문성을 키웠다. 그리고 소수 임원이 독점한 재무와 판매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그 결과 포드의 전 직원이 회사가 처한 위기상황을 절감했다. 사내 반발이 있었음에도 그룹 내 고급 브랜드인 재규어, 랜드로버, 애스턴마틴, 마쓰다를 차례로 매각했다.

다음은 친환경차로의 방향 전환이다. 승용차 부문에서는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린 4.0L 이상 대형 배기량각주5) 엔진을 모두 없앴다. 대신 출력을 높이는 터보엔진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12년 출시한 대형 SUV 익스플로러에 4.2L 엔진 대신 240마력이 나오는 2.0L 터보엔진을 달았다. 연비가 좋아진 익스플로러에 미국 소비자들은 만족했고, 대박을 쳤다. 더 이상 포드에서 대형 엔진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포드는 2015년까지 모든 승용차에 3.0L 이하 터보엔진을 달기를 결정했다. 여기에 하이브리드각주6) , 전기차로도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다. 보수적 기업문화로 유명했던 포드가 조직문화부터 경영 체질을 확 바꾸고 있다.

2.0L 터보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이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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