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웨스트가 보여준 진정한 리더십
제임스 C. 헌트가 지은 『서번트 리더십 2』에 나오는 훌륭한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유능한 기업인과 유능한 리더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공한 기업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 리더라고는 할 수 없다. 저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의 말을 상기하자. “그리 훌륭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말이죠”
많은 잡지들이 지금, 이 순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기업인들을 우상화하여 표지에 소개한다. ‘비즈니스 리더’에게는 탁월한 야심가나 전략 계획가, 조직 구성의 대가, 전술의 천재 등의 수식어가 어울린다. 물론 이 모두는 중요한 관리 기술에 해당되지만, 뛰어난 리더십이나 타인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는 별 관련이 없다.
이처럼 리더십을 과도하게 숭상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바람에, 유연하면서도 까다로운 성향의 X세대들을 직접 리드해야 하는 평범한 관리자나 부모, 코치, 성직자, 교사들은 오히려 리더십을 더 어렵고 복잡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누구도 타인을 강제할 수는 없으며, 권력을 이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규정한 리더십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위에 수반되는 권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타인의 열정과 헌신을 북돋우도록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규정한 리더십 정의의 핵심은 “타인의 최선(greatest good)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정말 유능한 팀은 독재자나 권력자가 리드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공동체에는 리더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유능한 팀은 팀의 성공을 위해 개인적 책임 의식을 지닌 리더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성공 가능성을 반반으로 생각하며 시작한 결혼생활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성공적인 기업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결혼생활 역시 두 사람 모두가 그 게임 전부를 쏟아부어야 한다. 팀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며, 팀의 앞날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팀원 각자가 남긴 흔적의 색깔이다.
최근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이 원칙을 다시금 확인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우스웨스트는 서번트 리더십의 모범적 사례이며 ‘LUV’란 약자로 뉴욕증권거래소에 등록된 항공사다. 이 항공사의 유명한 슬로건 중의 하나는 “사랑을 만들어가는 항공사”다
내가 사는 곳의 디트로이트 인근 지역이다. 디트로이트는 노스웨스트 항공의 허브(근거지)로서, 과거에 내가 출장을 다닐 때는 이 항공사를 주로 이용했다. 그런데 2년 전 출장길에 나섰다가 노스웨스트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우스웨스트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항공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번트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이 회사를 통해 직접 목격했다. 머리 위 짐칸에 숨는 승무원, 승객들에게 재미있는 농담을 건네는 직원들의 모습이 내게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우스웨스트의 승무원들이 실천하는 서번트 리더십 정신에서 가식이라고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수속을 마치고 플라스틱 탑승권을 받았는데 엉뚱하게도 좌석번호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탐승자들을 향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서 들어가세요!”
사우스웨스트의 탑승 방식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사람들 사이에 끼어 가운데 줄 맨 뒤쪽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항공사에 대해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출발을 위해 비행기 문을 닫으려는 순간 열 살 남짓한 아이가 기내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의 두 팔에는 학생들이 흔히 기금을 마련할 때 판매하는 형태의 막대사탕이 여러 상자 들려 있었다.
기내에 빈 좌석은 한두 개뿐이었고 더군다나 머리 위의 짐칸은 이미 오래전에 꽉 찬 상태였다.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던 나는 이런 경우에 벌어질 상황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심술궂은 승무원들이 아이를 나무라며 한마디 했을 것이다. “이 상자들은 모두 검색해서 수화물 칸으로 보냈어야지. 여기엔 이 상자들을 보관할 장소가 없잖아!”
그러나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어느 젊은 여성 승무원이 아이 앞에 다가서더니 “사탕 파는 걸 도와줄까? 하고 말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대답했다. “정말로요?”
승무원은 아이가 든 상자들을 들고 조종실로 들어갔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승무원이 승객의 짐을 들고 조종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날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여 일정 고도에 접어들자 그 승무원이 방송실로 들어가더니 안내방송을 했다. “지금부터 막대사탕을 하나에 2달러씩 판매할 예정입니다. 제가 사탕을 들고 복도를 따라 이동할 테니 원하시는 만큼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으로 구입을 거절하신 분은 제가 따로 기억했다가 다른 분들께 알릴 테니 그리 아세요!” 그러자 기내에는 한바탕 폭소 터졌다.
당연히 복도의 절반도 채 다다르기 전에 사탕이 동이 나고 말았다. 승객의 절반 이상이 사탕을 구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느니 그 승무원으로서는 꽤나 난감했을 것이다. 그때 장난기 많은 몇몇 승객들은 사탕 가격을 더 높여 다른 승객들과 흥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마디로 3만 7,000피트 상공의 비행기 내에서 또 하나의 상거래 업체가 문을 연 셈이었다. 그 일 덕분에 비행기에 올랐던 모든 승객들은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사우스웨스트에서 별다른 지위도 가지지 못한 한 승무원이 보여준 리더십이 이 정도였다. 소년을 돕기 위해 애쓰던 그녀의 모습은 비행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했다. 한 손에는 빈 상자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현금을 두둑이 든 소년의 상기된 표정은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승객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우스웨스트만을 줄기차게 고집했다. 그리고 이 항공사의 비행기를 이용할 때마다, 고객과 서로를 위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명 의식으로 무장한 승무원들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의 승무원 집단이야말로 ‘리더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독려하고 유머와 열정을 통해 고객의 만족스러운 여행을 창조해내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어떤 행동도 불사한다는 사명 의식이야말로 고객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승무원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극대화하는 밑거름이다.
사우스웨스트가 엉뚱하고 문제도 적지 않은 조직이라며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항공사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실제로 이 항공사는 구조적으로 수익을 올리기가 만만치 않은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지난 3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항공업계의 대재앙으로 불렸던 2001년 9월 11일 이후 거의 3년이란 기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우스웨스트가 정도를 벗어난 기업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내가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 항공사의 시가총액이 11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미국의 6대 항공사로 꼽히는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델타, 노스웨스트, 컨티넬탈, US 항공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에 이른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직원들 모두가 리더십 의식을 가진 기업, 직원들 모두가 팀의 성공에 대해 책임 의식을 지닌 기업이라면 정말로 성공적인 기업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불행히도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을 통틀어 이처럼 소중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조금씩 보인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지위에 수반되는 권력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 조직의 일부가 되는 것만으로도 그 조직에 자신의 흔적을 아로새길 수 있다. 문제는 그 흔적이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다.……>
모두가 리더이고 책임 의식을 지닌 기업이나 조직이 크게 성공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단기(檀紀) 4,354년(CE, Common Era, 2,021년) 2월 6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