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님의 시방

도 둑

forever1 2007. 4. 7. 07:38


도둑 /류시화 도둑이 온다면 큰 길로야 오지 않겠지 그가 온다면 내 집 뒤에 작은 오솔길 풀 몇 줄기 쓰러지며 오겠지 그러면 나는 불을 끄고 잠든 척 해야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하면서 어떤 새가 밤의 풀섶에서 새끼를 치는 것이려니 하면서 도둑이 온다면 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오겠지 그가 온다면 내 깊고 깊은 잠 꿈의 강을 건너 오겠지 그러면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든 척 해야지 잠든 척 하는 자를 누가 깨울 수 있으랴 그는 이미 깨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