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님의 시방

길 위에서의 생각

forever1 2007. 11. 10. 07:36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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