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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경쟁모델]① 삼성전자 "경쟁자는 콘텐츠 강자 아마존"

forever1 2013. 10. 20. 09:25

 

[대기업 경쟁모델]① 삼성전자 "경쟁자는 콘텐츠 강자 아마존"

조선비즈 | 장우정 기자 | 입력 2013.10.20 06:01
    한국 대표기업들은 잠재적 경쟁자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업체를 꼽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마존을 연구하고, 포스코는 구글을 벤치마킹한다. LG전자와 LG화학은 IBM에서 에너지솔루션 사업의 방향을 찾는다. 세계적 기업의 시스템과 사업모델을 연구해 새로운 경쟁환경에 대응해 나가는 국내 대표기업들의 성장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제프 베조스 미국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2011년 9월 뉴욕에서 신제품 태블릿PC 신제품 '킨들 파이어'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존은 전자책 단말기에서 시작해, 태블릿PC, 스마트폰(개발중)으로 디바이스 풀을 늘리고 있다. 콘텐츠를 더 많이,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조선일보DB

    ↑ 아마존 모바일 스토어 '아마존 앱스토어' 모습. 영화, TV 콘텐츠부터 아마존 킨들에 쓸 수 있는 액세서리까지 판매 중이다. /장우정 기자

    "앞으로 스마트 디바이스(기기) 시장경쟁의 성패는 콘텐츠와 플랫폼이 좌우한다. 삼성전자의 경쟁자는 중장기적으로 애플이 아니라 아마존닷컴(이하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가장 강력한 콘텐츠와 플랫폼 기반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부서인 IM(IT&모바일)부문과 CE(소비자가전)부문 중 TV사업 영역에서 아마존은 롤모델이자 잠재적 경쟁상대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

    아마존은 제프 베조스(49)가 1995년 창업한 온라인서점이었다. 지금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올해 매출 추정치는 750억달러(약 80조원), 시가총액은 1400억달러(약 149조원)에 달한다.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브래드 스톤 선임기자는 아마존을 '에브리싱 스토어(the everything store)'로 칭한다. 옷·책 같은 일반 상품부터 보이지 않는 디지털 상품까지 모든 걸 파는 곳이란 의미다.

    삼성전자는 지금 디바이스 제조업체인 애플보다 콘텐츠 왕국인 아마존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왜 아마존을 좇으려는 걸까. 삼성전자가 과연 아마존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지와 그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아마존의 두 가지 키워드

    ① "콘텐츠가 돈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돈을 벌 수 있는 건 '콘텐츠'라고 봤다. 아마존의 초기 사업모델은 '플랫폼'이었다. 인터넷 상에서 콘텐츠를 사고 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판매자와 구매자간 거래를 유도했다. 아마존은 콘텐츠 중개상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업 영역을 콘텐츠의 유통·생산으로 확대했다.

    아마존은 콘텐츠 업체 수십 곳을 인수·합병(M&A)했다. 전자책 외에 오디오·비디오까지 콘텐츠 서비스 영역을 늘렸다. 2011년 주요 고객 500만명을 상대로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 고객은 영화와 TV쇼를 웹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아마존 스튜디오는 영상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게임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 1일에는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까지 인수했다. 이로 인해 아마존은 활자·음성·영상 등 갖가지 형태의 콘텐츠를 두루 확보하게 된 셈이다.

    아마존은 2007년 11월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출시했다. 콘텐츠 때문이었다. 킨들 개발팀은 '어떻게 하면 독자가 책을 읽을 때 이야기만 남고 킨들 자체는 사라지게 할 것인가'에 역점을 뒀다. 킨들의 디자인과 기술 모두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설계됐다.

    아마존은 이어 태블릿PC를 내놨다. 스마트폰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마존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아마존폰이나 킨들폰을 선보일 것"이라며 "스마트폰은 태블릿PC보다 대중적이다. 아마존폰은 기존 스마트폰 업체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닷컴 경제학'의 저자 류영호 교보문고 콘텐츠사업팀 차장은 "아마존은 디바이스 자체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 지난 20년간 구축한 콘텐츠를 (디바이스를 통해) 많이 팔아서 수익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나 애플은 자체적으로 만드는 콘텐츠가 없는 만큼 따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② "고객에게 미쳐라"

    아마존 경영철학의 핵심은 '고객우선'이다. 다른 기업과 별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아마존에게 고객우선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전략이다. 아마존의 500개 성과측정 기준 중 80%가 고객 관련 지표다. 아마존 회의에는 늘 빈 의자가 하나 있다. 고객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베조스는 고객이 회의에 참석한 양 경건하게 회의를 주재한다.

    아마존 임직원은 베조스를 시한폭탄이라 부른다. 베조스는 고객 불만을 자기 이메일(jeff@amazon.com)로 받은 뒤 담당 직원에게 전달한다. 메일 앞에 물음표를 붙인다. 담당 임직원은 가능한 빨리 고객 불만의 원인을 찾고 해결방안을 베조스에게 보고해야 한다. 10년 이상 재직한 아마존 임원은 "베조스에겐 고객 서비스 개선이 1순위다. 그 다음에 자기 사생활이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2009년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를 12억달러(약 1조2800억원)에 인수했다. 자포스는 고객우선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당시 미국 마케팅 전문가들은 자포스의 경영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이념적 인수'로 평가했다.

    ◆ "삼성 모바일 스토어, 아마존 배워야"

    삼성전자는 콘텐츠나 플랫폼 사업 영역에서는 절대 약세다. 스마트 디바이스 판매 세계 1위라는 시장 지위를 소프트웨어·콘텐츠 유통·제조 사업에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갤럭시 이용자는 구글 모바일스토어 '구글플레이'에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을 내려받는다. 삼성의 모바일스토어 '삼성앱스'는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2011년부터 인텔과 함께 앱 스토어를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아마존은 모바일 스토어 '아마존 앱스토어'를 운영한다. 앱 20만~30만개가량이 거래된다. 규모 면에서 애플 앱스토어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태생부터 제조업체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사업 경험이 일천하다. 그러다보니 하드웨어 담당자가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한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담당자의 입김이 약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밝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는 "삼성전자에서는 하드웨어 부서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다보니 소프트웨어 부서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류영호 차장은 "삼성전자가 콘텐츠 제작·유통 역량을 강화하고 모바일 스토어를 활성화한다면 스마트 기기나 TV 사업 영역에서 콘텐츠 유료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미등(따라가기) 전략'으로 애플을 단숨에 따라 잡았듯이 아마존도 잡을 수 있을까. 업계 전문가 사이에는 전망이 엇갈린다. 김석기 로아컨설팅 이사는 "아마존의 전자책 사업은 2년 전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장기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열매는 없다. 삼성전자 같은 제조업 기반의 회사가 수익성을 접어두고 콘텐츠에 꾸준히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전자가 아마존에 비해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것도 약점이다.

    삼성전자는 지금 현금 20조원가량을 갖고 있다. 이 자금으로 콘텐츠 업체를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하면 단숨에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대기업 소속 콘텐츠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아마존을 따라가려면 자기가 다하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콘텐츠 종류별로 탁월한 업체를 인수해 사업 진용을 갖추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아마존처럼 플랫폼 사업부문을 세운 뒤 스핀오프(분사)하고 전문 경영인이 독립 경영하는 방법도 고려할만하다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