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癌으로 배우자 잃은 남녀 "슬픔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더라"

forever1 2018. 1. 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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癌으로 배우자 잃은 남녀 "슬픔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더라"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1.20. 03:04

동병상련 나누다 연인으로.. 전화 인터뷰로 들은 '그들의 사랑'
죽기 직전에 쓴 자서전
'숨결이 바람될 때' '이 삶을..' 투병 과정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 "마치 쌍둥이 같아"
이메일 나누다 사랑 싹터
응원·위로 메시지 보내며 소통 "치유의 또 다른 과정이었죠"
여전히 손엔 각자의 결혼반지
"떠나간 사랑 영원히 못 잊죠..우리를 늘 응원해줄거라 생각"
새로운 가족의 탄생
각자의 딸과 아들 둘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 꾸리려 해.. 미국인들 "감동의 해피엔딩"

여기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폐암에 걸린 6년 차 신경외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의 마지막 2년을 담은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 또 하나는 유방암 선고를 받고 1년 6개월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간 서른여덟 작가 니나 리그스의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The Bright Hour)'. 두 책 모두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시한부 이야기이자 각자의 배우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사랑가(歌)다. 둘 다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수작들. NYT는 2016년 칼라니티의 회고록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사랑 얘기가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최근 "두 회고록 집필자의 배우자 둘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폴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38)와 니나의 남편 존 두버스테인(41)이 그 주인공. 사별(死別)로 각자의 배우자를 떠나 보낸 두 남녀의 이야기가 언뜻 불경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마시길. 폴과 니나는 각자 자신의 책에서 "배우자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그에 뒤따르는 복잡한 감정은 이들의 몫이겠지만. 루시는 현재 스탠퍼드대 의대 조교수, 존은 노스캐롤라이나주(州) 국선 변호사로 각각 일하고 있다. 두 차례 루시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얘기를 직접 들었다.

"미치지 않는 법을 알려주세요"

이 예외적 사랑의 시작은 약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3월 '바람'이 되어 세상을 떠난 폴. 그가 남긴 생애 마지막 날들의 기록은 이듬해 책으로 나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폴의 죽음 후 편집자가 되어 남편 책을 완성한 아내 루시는 남편을 대신해 미국 전역을 누비며 강연을 하고 그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2년여 시차를 두고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니나. 니나는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의 5대손(孫)이다. 그녀는 책에서 유방암 1기부터 4기까지, 약 1년 6개월의 투병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두 사람이 남긴 유작(遺作)은 주제가 비슷해 "마치 쌍둥이 같다"며 함께 회자되는 경우가 많았다.

재작년 9월, 루시가 먼저 연락했다.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일상의 소중함을 조명하는 니나의 글에 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주로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게 루시의 역할이었다. 니나가 세상을 뜨기 이틀 전 루시는 이렇게 적었다. "내 모든 존재가 너를 향하고 있다. 너의 영원한 팬, 루시가."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있던 니나는 끝내 답장하지 못했다. 니나의 죽음 이틀 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존이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최초의 마주침이다.

"물병자리 남녀의 만남이었습니다(둘 다 생일이 1월이다). 니나는 홀로 남을 존을 그 누구보다 걱정했어요. 먼저 배우자를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제가 존의 '가디언(보호자)'이 돼주길 원했죠. 니나가 떠난 후 존은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상실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어요. 존에게 있어 니나는 인생의 상수(常數)였으니까. 존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어떤 도움을 줬나요.

"시작은 이메일이었어요. 존이 처음엔 제게 '미치지 않는 법(not to go insane)'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추도사를 쓰는 것부터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법, 소소한 가정일까지. 그렇게 주고받은 이메일이 100통을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쌓인 유대감은 생각보다 강했어요. 서로 이메일 교환 없인 하루도 버티지 못하게 됐죠. 폴을 떠나보내고 저도 한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존과의 소통이 치유의 또 다른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존은 지금도 '구글' 덕분에 우리가 만나게 됐다고 농담합니다."(둘은 구글의 지메일 서비스를 이용했다.)

―첫 만남은 어땠나요?

"작년 4월, 동부로 출장 갈 일이 생겼어요. 제가 있던 곳은 존의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 존이 달려왔죠. 이메일로만 소통하자던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금기(禁忌)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 저를 꼭 안아주더군요. 두 번 정도 저녁 식사를 했어요. 서로 감정의 기류(chemistry)가 흐르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둘에서 다섯으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와 니나 리그스의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위쪽부터).

"두 사람은 언제쯤 함께할 건가요? 전 국민이 사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난 6월 한 북토크에 나란히 참석한 루시와 존에게 사회자가 이렇게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둘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진지한 관계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질문에 "존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했다"고 루시는 회고한다.

한동안 교제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이들은 지난가을, 주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 용기와 숭고함에 100% 지지를 보낸다"고 했다. 루시에게는 딸 캐디(3)가, 존에게는 두 아들 프레드(10)·베니(8)가 있다. 죽음 앞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던 폴과 니나가 "떠나보내기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 아이들이다. 이제는 함께 모여 앉아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한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둘이 다섯이 됐죠! 가족의 확장이랄까요. 멀리 떨어져 살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존은 아이들을 위해 과일을 깎아주고요. 딸 캐디는 부엌에 앉아 '존이 해주는 스크램블드에그(계란볶음)가 제일 맛있다'고 말합니다. 평소엔 '페이스타임(영상통화)'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죠. 그동안 통화 횟수가 수억 번(gazillion)은 될걸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뉴욕에 사는 쌍둥이 여동생은 '존이란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알아야겠다'며 바로 니나의 책을 주문해서 읽더군요. 존을 직접 보고선 '그가 아재 개그(daddy jokes)를 하는 게 맘에 든다'고 하네요."

슬퍼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더라

둘은 여전히 각자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 소셜미디어엔 전 배우자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남아 있다. 존의 페이스북 배경엔 항암 치료로 삭발한 모습의 니나가 웃고 있다. 루시의 집엔 폴의 흔적이 역력하다. 폴의 사진은 물론 그의 손때가 묻은 신경외과학 서적까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딸 캐디의 침대 머리맡엔 폴의 생전 모습들이 있다. 폴과 니나는 여러 차례 "남은 배우자가 새 관계를 맺고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루시는 이를 '근원적인 허락(radical permission)'이라고 표현한다. 루시는 "하루에도 기쁨과 비애가 여러 차례 교차하지만, 슬퍼하면서도 또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려움이 왜 없겠어요. 존과의 관계는 아픔과 상실감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은 헤아리기 힘들죠. 만성적인 통증과 피할 수 없는 변화 사이에 있는 듯해요.

(존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게) 폴을 잊겠다는 뜻이 절대로 아녜요. 폴과 니나는 아이들의 훌륭한 부모였고, 우리 둘의 사랑스러운 배우자였습니다. 영원한 가족이고 잊을 수 없는 존재들이죠. 새해 전날, 폴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광대한 태평양이 보이는,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바닷가지요.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틀고 함께 지는 석양을 바라봤습니다.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또 응원해줄 거라 생각해요."

"바람이 된 숨결이 밝은 시간을 가져왔다"

동병상련으로 시작해 사랑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조금은 '독특하고 특별한' 이 커플의 이야기에 미국인들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이 사랑과 용기를 보아라" "감동과 기쁨의 해피엔딩"이란 반응이다. 물론 한국 정서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둘의 보금자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는 대륙의 서쪽과 동쪽 끝에 있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3000㎞. 비행기를 타고도 대여섯 시간이 걸린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引力)이 너무 강한 탓일까. 이제 하나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만나면 누구 동네가 더 날씨가 좋은지, 아이들을 키우기에 더 적합한지, 사소한 언쟁을 벌입니다. 미국 한가운데에 집을 마련해야 할까 봐요. 갑작스레 찾아오는 사별, 그 이후의 생활(widowhood)에 잘 준비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굴에서 나와 소통하고 또 더 따뜻한 사랑도 나눴으면 좋겠어요. 폴과 니나가 바라던 것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루시와 존이 최근 자주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람'이 된 '숨결'이 '밝은 시간'을 가져왔다(When Breath Becomes the Bright Hour)"고.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어두웠던 이들의 일상에 다시 서광이 비치고 있다. 루시와 존, 그리고 듬뿍 사랑을 받고 커 나갈 세 아이까지. 새로운 가족이 출발점에 서 있다. 이제는 아픔과 눈물이 없을, 그들에게 주어진 이 '밝은 시간'들을 누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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