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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무섭고 돈도 떨어진 김정은

forever1 2018. 2. 15. 10:28




미국이 무섭고 돈도 떨어진 김정은

이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8-02-15 03:00수정 2018-02-15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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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위원
미국은 정말 북한을 때릴까? 그럼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면 미국과 북한 정권의 속성부터 살펴봐야한다,

△평양의 속성=“북한도 나라인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수개월후 정통한 북한전문가들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물었다.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결과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남의 해역에 잠수정을 보내 해군선박에 어뢰를 쏘고 도망간다는, 소설 속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그런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결정이 도대체 어떻게 한 나라의 정부 시스템내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납득이 안간다고. 아무리 허접해도 북한도 국가는 국가 아닌가. 답은 이랬다.

“모 재벌 회장이 가죽장갑을 끼고 술집에 찾아가서 종업원들을 팼습니다. 정상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라면 참모들이 말렸겠지요. 하지만 보스가 격앙상태에서 결정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우리 주변에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스가 결정하면, 아무리 비합리적이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그런 조직들이 있다. 대표적인게 조폭인데, 평양정권의 속성이 바로 그것을 닮았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북한에도 형식상의 논의 시스템은 있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정하면 그대로 시행이다. 행정부가 있지만 집행기관일 뿐, 김정일때는 군(軍), 현재는 당이 중심이다. 아웅산 테러, KAL기 폭탄 테러 등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에선 도저히 이뤄지기 힘든 결정들의 비밀은 봉건적 전제군주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조폭식 의사결정 구조에 있는 것이다. 

△워싱턴의 속성=“CSAR은 어떻게 됐지?” 9·11테러 수주후인 2001년 9월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매일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며 CSAR 진전 상황을 챙겼다. CSAR는 ‘수색 및 구조 작전(combat search & rescue)’를 뜻한다. “미군 전투기가 적진에 추락할 경우 구조대를 보낼 수 있는 전진기지가 구축되기 전에는 작전을 개시할 수 없다. 그게 기본원칙(bedrock doctrine)이다”는 합참의장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공격을 위한 항공모함 이동 배치 등 군사적 준비는 이미 수주전 완료됐지만 부시 대통령은 조종사 구출 대책이 완비되기 전에는 공격 개시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미 행정부는 자국민의 생명보호를 최우선에 둔다. 군인, 소방관 등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며 전쟁결정을 여러번 내렸지만, 일반 시민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대통령직의 종말을 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0)로 봤었다. 북한 보복공격 사정권내(한국)에 주한미군을 포함해 미국시민권자 20여 만명이 있는데 이들의 안전에 대한 확실한 대책없이 군사작전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먼저 소개(疏開)작전을 해야하는데 이는 비밀리에 이뤄질 수 없다. 예고된 공습은 북한의 대응력을 높여줘 작전성공 난이도가 너무 높아지고 확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코피 터뜨리기 작전’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코피작전은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행정부가 검토했던 영변 핵시설 폭격이나 최근 수년간 거론된 ‘외과적 정밀타격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는 북한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되, 김정은이 체제 붕괴를 각오하고 무력으로 대응할 정도는 아닌 그런 제한적 기습작전이다. 북한이 나포해 50년째 대동강에 전시하고 있는 미국 선박 푸에블로호 폭파, 회령 등지의 김일성 동상 폭격 등이 예시로 거론된다. 아이들 싸움에선 한쪽이 코피가 나면 싸움이 끝난다. 그러나 북한이 별다른 보복공격에 나서지 않을 만큼의 기습타격이 어느 수준인지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다. 빅터 차 주한대사 내정자 낙마도 이런 논란 속에서 빚어졌다.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에서 보듯 평양 정권의 조폭적 의사결정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폭은 힘 앞에선 비겁하다. 힘이 센 상대를 향해 도발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멈춘다. 조직원이 잡혀가도 검찰청이나 경찰청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는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보스 자신이 끝장난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어느 수준의 도발이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작전을 감행할 명분과 방아쇠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앞에서 발만 세게 구르고 있다.  

게다가 지금 김정은은 돈 떨어진 보스 처지다. 조폭 보스는 돈과 술, 룸살롱으로 조직원들을 다스린다. 평양 정권은 달러와 광산채굴권 등의 특혜로 당과 인민군을 다스려왔으나 국제제재로 달러와 에너지 조달이 거의 막혔다. 그래서 김정은은 대남 유화 공세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이 주선해준다면 못이기는체 미국과 테이블에 앉아서 핵은 유지하고 ICBM은 동결하는 식으로 협상을 해볼 심산일 것이다. 조폭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힘이다. 그 이외의 가치로는 설득이나 통제가 안된다. 조금만 더 압박의 강도를 높여서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제재한다면, 김정은은 더 변하고, 무력충돌 위험지수는 계속 내려갈 것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