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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신화를 일군 주역

forever1 2019. 10. 22. 21:14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신화를 일군 주역


정몽구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영광은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때 꽃을 피웠다. 정 회장은 손이 정말 크고 두텁다. 악수를 여러 번 해봤지만 그때마다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가 현대차를 맡고 승승장구한 데는 경영 능력 이외에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적중한 경우가 많았다. 운도 많이 따른 셈이다. 기자는 정 회장과 출국 직전 공항에서 인터뷰를 하는 등 지금까지 10여 차례 넘게 대화를 나눴다.

정 회장은 1980, 90년대 현대정공과 현대차서비스를 경영하며 자동차 공부를 했다. 특히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현대차의 품질 문제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했다. 출고한 지 석 달도 안된 멀쩡한 신차가 사소한 결함으로 공장에 들어오게 돼 잔뜩 화가 난 소비자의 거친 불만도 지켜봤다.

현대정공은 1990년대 초 미쓰비시 기술 제휴로 갤로퍼(미쓰비시 파제로)와 싼타모를 생산했다. 당시 미쓰비시는 로열티 이외에 기술지도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 원을 가져갔다. 겨우 적자를 면하던 시절, 피땀 같은 현금을 뜯기며 기술이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 품질·기술이 있어야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셈이다.

1998년 현대차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품질이다. 수시로 울산·아산공장을 방문해 도어·보닛을 거세게 닫아봤다. 이런 과정에서 나사가 튀어나오거나 조립 틈새가 보이면 공장장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현대차의 공장장(부사장급 이상) 가운데 1년도 안돼 잘린 경우가 수두룩했다. 아울러 한 달에 두 번씩 열리는 품질회의에서 품질을 구매·재경·판매 등을 전사 책임으로 만들었다. 사소한 원인이라도 추적해 수시로 본부장 옷을 벗겼다. 조직에 절로 긴장감이 돌았다.

퇴직한 전직 사장은 “임원이 되면 언제 잘릴지 몰라 오전 6시에 출근해 업무를 챙기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22층(회장실)에서 호출이 오면 잘릴 것을 각오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런 긴장감이 품질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01년 바닥권이었던 미국 자동차조사업체 JD파워의 신차품질 성적이 쑥 올라갔다. 2009년에는 일반브랜드 순위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정상급으로 도약했다.

품질 이외에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두려운 말이 ‘양재동에 태양이 두 개’라는 것이다. 사장단 가운데 언론에 좋은 칭찬이 나온 후 얼마 있다가 해고된 경우가 여럿이다. 한 눈 팔지 말고 업무만 잘하라는 주문이었다.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9세기 대영제국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의 꿈이 바로 ‘해가 지지 않는 왕국(생산기지)’ 건설이다. 2000년 이후 그의 머릿속에는 늘 해외 진출로 가득하다. 2014년이면 러시아·브라질 공장과 현대·기아 중국 3공장을 포함해 8개국에 연산 450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정 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오전 6시 반에 출근한다. 토요일도 빠짐없이 나온다. 현대제철 고로를 짓고 있던 2010년에는 토요일 헬기를 타고 당진 현장을 20여 차례나 다녀오곤 했다. 현안이 있으면 새벽 5시에도 부회장이나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업무 보고 도중 프로젝터 전등이 꺼지거나 공장에서 자동차 보닛을 잘 열지 못한 임원은 즉각 해임하는 등 연중 불시(不時) 인사를 단행한다. 그러다 보니 현대차 간부들은 늦어도 7시 전에 출근해야 한다. 전무급 이상은 통상 6시 20분까지는 출근해 회장이 찾으면 즉각 보고를 해야 할 정도다. 2011년 하반기 토요일 출근을 자제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6개월 만에 사라졌다. 이런 긴장감이 현대차식 스피드 경영과 ‘하면 된다’라는 공격적인 기업 문화를 만든 배경이다. 하지만 스피드 경영의 이면에는 허위보고도 많다. 어차피 잘못을 보고해 잘릴 바에야 허위보고로 위기를 넘기고 나중에 발각될 때 ‘다니고 보자’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