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작년에 문경새재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어서 나이 많은 등산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장소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울울창창한 숲들과 높은 산들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가늠질 보기도 했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석용산 스님의 문경새재라는 글이 좋아서 가지고 옵니다.
<문경새재
내 발자국 소리!
솔이 일어나네
산이 일어나네
눈을 인 문결새재가 일어나네
쉬어 쉬어 넘었을
옛님들
하얗게 살아나네
전생의 누구로 걸었을
하얀 새벽
밟아 보네!
아! 이런 곳을 별천지라고 하는 것일까? 산이 숨고 솔이 숨고, 풀소리 바람소리마저 하얗게 숨어 버린 문경새재! 소리 없는 눈들의 춤은 환상의 세계로 손짓한다.
제 무게 못 이겨 핏덩이처럼 툭툭 떨어져 내리는 눈뭉치의 절규가 온 산을 잔잔히 메아리치고, 섬뜩 놀라 일어서는 눈발들의 몸서리가 하얗게 하얗게 잠들었던 영혼까지 깨운다.
나구에 봉물짐을 잔뜩 얹은 장돌벵이! 허리춤에 딸년 혼수 장만할 전대를 다부지게 잡아 맨 끝순 아비!
얼기빗, 참빗, 큰 채, 둥근 채 어깨 울러맨 떡거머리 총각!
그만 그만한 영혼들이 어울려 세재를 넘는다.
나도 어느 생인가 저 모습으로 이 길을 걸었기에, 눈 덮인 풍경들이 이리도 따사롭겠지. 자욱자욱 밟히는 빠드득 소리마다 도시의 권태가 녹는다. 가슴팍 깊이 깊이 스며드는 시린 공기는 매연으로 찌든 폐액을 녹인다. 오장육부의 실핏줄 틈새마다 삐져 나오는 환희의 떨림은 온 산을 흔들고 우주를 깨운다.
골짝 공짝 버지는 소리 없는 메아리는 깊은 입맞춤의 떨림처럼 울어댄다. 솔가지 가지엔 파아란 사랑이 솟고 천길 낭떠러지엔 삶이 소는다.
오! 만길 오뇌처럼 문결새재가 문결새재가 살아난다.
솟아라 솟아라, 문결새재야! 그리움도 옛님도 잃어버린 요새 사람들 가슴에 큰바위 얼굴처럼 소아라!>
단어 하나하나 마다, 구절구절 마다 시로 들려오는 석용산 스님의 엣세이가 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세키 정도 자란 아카시아 그늘 아래에 핀 하얀 수국 옆에서 더위를 식혀가며 한 줄 한 줄 읽어 봅니다. 지친 삶이 녹아나고 쌓인 스트레스가 이슬 방울처럼 툭툭 떨어져 나갑니다. 오전에 텃밭에서 흘린 땀방울이 오히려 내 팔다리에 에너지로 승화되어 눈을 맑게 하는 것 같습니다.
2020년 6월 28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김 병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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