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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부모가 되다

forever1 2023. 4. 9. 08:57

 

 

나쁜 부모가 되다

 

토요일 퇴근 후 졸지에 나쁜 부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먹여 살려야 할 딸린 식구(食口, members of a family)가 많은데, 딸아이가 집을 나간 지 족히 한 달은 넘었을 것 같은데, 이제야 안 것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내는 집안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있을 소양 교육에는 도청에 사는 처제(妻弟, one's wife's younger sister)의 차를 얻어타고 읍내로 갔습니다. 저는 피곤했지만, 낮잠을 자는 것보다 밭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웃자란 풀도 뽑아서 닭들에게 주었답니다. 그리고 올해 심은 나무들이 살아 붙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노닐며 지저귀는 닭 소리와는 달리 텃밭 어디에선가 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 귀를 의심했고, 그리고 치매(癡呆, Alzheimer's)가 오려는 전조증상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텃밭을 살펴보았지만, 닭은 없었습니다. 다시 풀을 뽑아서 수분 증발을 막으려고 나무 주위에 갖다 놓고 있는데, 또 텃밭에서 닭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검은 닭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치매 전조증상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난시이면서 근시입니다. 그래서 약 5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물체는 확실하게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형체만 보인답니다. 그런데 검은 닭 주위에 조그마한 것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직감적으로 병아리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여러 마리의 검은 병아리들이 어미 닭의 품속을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저 딸아이의 아이들을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텃밭을 일구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이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제일 먼저 알려야 하는데, 교육 중이라 전화를 할 수 없어서 문자로 빨리 전화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들고양이 한 마리가 딸아이와 병아리가 있는 블루베리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고양이를 쫓아버렸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아내가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옷을 갈아입은 아내를 데리고 병아리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채근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불안한 기색을 띠며 왜 그러냐고 자꾸만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병아리를 확인한 아내는 어머나~”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답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새로운 닭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새로운 닭장을 지으면서 뜯어 놓은 연초록색 펜스가 생각났습니다. 전동 드릴 등을 끄집어내어 우리는 3시간 정도 작업을 하여 닭장을 만들었습니다. 들고양이도 돌아다니고 쥐들이 서식하는지라 그들이 침입하여 공격하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내는 아픈 무릎이지만, 삽과 손수레를 동원하여 모래를 닭장 안으로 가지고 가서 평탄 작업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먹이와 물을 줄 수 있는 출입문도 만들었답니다. 아내도 만족하는 눈치였습니다.

해가 서산에 근접했을 무렵 우리는 집 나간 딸아이와 그녀의 식구들 구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장비는 필요 없고 남들은 수천억 원씩 넣어서 어떻게 했다는 종이상자 하나만 충분했습니다. 부직포 속에 있는 딸아이를 먼저 붙들어 상자 속에 넣고 집사람에게 상자 뚜껑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꼬물이 병아리를 살며시 붙들어서 상자 속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병아리가 무려 10 마리나 되었답니다. 아내도 놀라고 저도 놀랐습니다. 우리는 새로 지은 닭장 속에 멋진 작은 집을 하나 넣고 거기에 어미와 병아리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어미 닭이 안심하도록 그들이 부화한 부직포로 지붕과 앞을 가려주었습니다.

부화하지 않은 알이 2개였고 부화한 병아리가 10마리, 그리고 부화 기간이 21일이고 하니 대충 계산을 해 봐도 딸아이가 집을 나간 지는 33일 이상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밭둑을 일궈서 꽃무릇을 심을 때 바깥으로 나와 블루베리 주위에서 먹이를 찾는 닭을 보기는 했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닭들에게 먹이를 준 다음 윤달이(윤달에 태어났다고 제가 붙인 이름)’들에게 가 보았습니다. 아직 어미 품속에서 나오질 않아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미에게 먹이를 조금 주었는데, 자기 새끼를 어떻게 할까 봐 부리로 공격을 했습니다. 먹이를 조금 준 후 닭장 밖으로 나와 살펴보니까, 윤달이 2마리가 나왔길래 어미 닭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윤달이들이 왜 전부 까만 거야

얘들이요, 모두 밤에 태어나서 그래요.” 하더라고요.

아내와 저는 이 닭들도 반려동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키워서 잡아먹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얘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단기(檀紀) 4,356(CE, Common Era 2,023) 39

소백산 끝자락에서 作家 詩人 김 병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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