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님의 시방

그를 위해서라면

forever1 2007. 4. 26. 07:28


    
    
     그를 위해서라면  / 이정하



    내 그대를 위해 하루에 담배 한 개비씩
    덜 피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아주 작은 티끌 하나로도
    그대의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악보가 되어 주진 못하나
    건반이 되어 소리를 내겠습니다.
    건반마저 되지 못한다면
    그대가 앉아 있는 의자라도 되겠습니다.




    그대가 시집을 읽을 때
    시는 되어 주지 못하나
    안경이 되어 활자를 밝히겠습니다.
    그마저 되지 못한다면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책갈피라도 되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작정한 모든 것이
    그대 눈가의 잔주름 하나 지울 수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된들 상관 있겠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대 곁에서
    가까이만 있겠습니다.



    내 그대를 위해 거창한 것은 해주지 못하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은 되어 주지 못하나
    행여 티끌 하나라도 근심은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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