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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마신다. '수제맥주' 이어 '수제커피' 시대

forever1 2017. 10. 19. 08:19



[글로벌 트렌드] 개성을 마신다..'수제맥주' 이어 '수제커피' 시대

손재권 입력 2017.10.12. 04:14

블루보틀 커피 바리스타가 커피 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블루보틀]
한국은 지금 크래프트 비어(수제 맥주) 전성기다. 수입 크래프트 비어가 들어오고, '한국 맥주는 맛없다'는 통념을 뒤집고 맛의 개성을 추구하는 국내 업체들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마트에는 크래프트 비어 종류가 지난해 100종에서 350종으로 늘어 맥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크래프트 비어는 아직 성장 여력이 많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가 분명하다.

맥주 본고장으로는 독일이 꼽히고 일본과 벨기에도 맥주 맛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크레프트 비어 본고장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시작한 보스턴비어컴퍼니(새뮤얼애덤스), 시에라네바다, 브루클린브루어리 등이 세계적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고성장을 거듭하던 미국 크래프트 비어 시장은 지금 소강 상태에 돌입했다. 실제 2014년 18%, 2015년에는 13% 성장했던 미국 크래프트 비어 시장은 지난해에는 6% 상승에 그쳤고 올해 역시 한 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크래프트 비어에 애정을 보이던 미국 소비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커피다. 크래프트 커피, 즉 수제 커피가 본격적인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Blue Bottle)'이 스위스의 세계적 식음료 회사 네슬레에 인수된 게 결정적 신호탄이 됐다. 지난달 14일 네슬레는 블루보틀 지분 68%를 약 4억2500만달러(약 48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네슬레가 평가한 블루보틀의 기업가치는 약 7000억원에 달했다.

블루보틀은 2002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차고에서 제임스 프리먼이 창업한 회사다. 프리먼은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 연주 투어를 다니면서 동료 단원들을 위해 커피를 직접 내려주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날 전문 음악가의 길을 접고 커피를 업으로 삼아 대박을 터뜨렸다.

블루보틀 커피를 경험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미국과 일본 등에 있는 매장 수는 현재 50여 개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도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스앤젤레스(LA)에만 집중돼 있다. 매장 50개 규모의 작은 커피전문점이 음식료 대기업 네슬레에 7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매각된 셈이다. 블루보틀은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경영도 독립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블루보틀이 큰 인기를 끈 것은 바리스타들이 60g씩 커피를 저울에 달아 물 온도를 맞춰 직접 손으로 내린 커피(드립커피)를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지는 속도와 비슷하게 빠르게 내리면서도 맛을 높였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매장에 줄을 서면 고객이 원두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주문하자마자 바리스타들이 앞에서 직접 내려준다. 블루보틀은 로스팅 48시간 이내의 싱글 오리진 원두만 고수하는 데다 색다른 추출 기법, 블렌딩 및 로스팅에 차별화가 분명해 사랑을 받고 있다.

블루보틀 커피.
블루보틀은 '속도'를 중요시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을 사로잡아 토니 콘래드 같은 유명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는 물론 트위터 최고경영자(CEO) 잭 도시와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와 같은 유명인들의 투자를 받았고 구글 벤처스 및 뮤추얼펀드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았다. 블루보틀은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구독' 서비스도 하고 있다. 월 15~18달러를 내면 블루보틀만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배달해준다.

실리콘밸리에는 다양한 크래프트 커피 하우스가 '포스트 블루보틀'을 노리고 있다. 필즈커피(Philz Coffee)가 대표적이다. 필즈커피는 매장 내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는 100% 크래프트 커피를 지향한다. 바리스타에게 먼저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커피에 민트 잎을 넣은 '민트 모히토'와 필하모닉(Philharmonic) 등의 원두로 인기를 끌고 있다. 8종 이상의 원두로 약 30가지 블렌딩(blending) 커피를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필즈커피는 특히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좋아하는 커피로 유명한데 페이스북이 본사를 팰로앨토에서 멘로파크로 이전할 때 커피 매장도 같이 오픈할 수 있도록 요청했을 정도다.

실리콘밸리에는 블루보틀과 필즈커피 외에도 사이트글라스(Sightglass), 리추얼커피(Ritual Coffee), 베어풋(Barefoot) 등이 제철 과일처럼 그 해 수확된 신선한 생두를 볶아서 즉석에서 내려주는 크래프트 커피를 판매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에 따르면 블루보틀 같은 크래프트 커피 브랜드가 점차 늘어나 현재 미국 전체 커피 소비의 15~20%를 차지한다고 조사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크래프트 비어'에 이어 '크래프트 커피'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고 인기를 끌 날이 머지않았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