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선물로 준 냥이..스님은 "살생하지 말거라"
입력 2018.02.05. 04:06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절 창고 지키며 길냥이로 살다
어느 날 스님을 선택했다
연을 맺은 냥이는 쥐와 새
잡아와 선물을 주고
스님은 "살생하지 말거라"
냥이를 대신해 용서를 빈다
[한겨레]
“냥이야.”
이름을 부르니 곤히 잠든 얼굴로 까딱, 귀만 움직인다. 겹겹이 쌓아둔 푹신한 방석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기지개를 쭉 켜고는 맞은편에 앉아 차를 따르는 스님 곁으로 내려온다. 이름 불러준 것에 응대라도 하듯 맞은편에서 뒹굴거리며 장난을 치더니 잠이 부족했는지 이내 스님 옆에 바짝 몸을 붙이고 다시 눈을 꿈벅인다. 바닥을 짚고 있던 스님의 오른손에 얼굴을 기대고 냥이가 잠이 들었다. “아이고, 이렇게 잠들면 어떡하라는 건지. 손을 뺄 수도 없고. 저더러 옴짝달싹하지 말라는 거죠, 허허.”
올겨울 가장 추웠던 지난달 23일, 최근 책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펴낸 보경 스님을 만나러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송광사를 찾았다. 절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웠던 날이었지만 탑전 작은 암자에서는 유독 훈풍이 새어 나왔다.
보살펴주면 나랑 살 건가
2016년 12월, 노란 줄무늬 고양이 ‘냥이’와 그해 여름 송광사 서울 분원인 법련사에서 주지승으로 지내다 순천으로 내려온 보경 스님은 처음 만났다. 스님은 자신을 콕 집어 찾아온 듯한 “떠돌이 산중 고양이”와의 인연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부르면 오고, 산책 가면 졸졸 쫓아오고, 어디 먼 길이라도 다녀오면 ‘왜 이제 오냐’는 듯 애타게 우는 냥이와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어느 날 고양이…’다.
“사람이 먹고 버린 반찬을 뒤지다 입가가 노랗게 물들어서는….”
스님에게 냥이와의 첫 만남을 묻자 눈빛이 애잔해졌다. 어느 겨울 오후, 스님의 처소가 있는 건물의 빛이 들지 않는 복도에서 냥이와 스님은 처음 만났다. “너 뭐야?” 강아지처럼 꼬리가 짧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복도에 앉아 있었다. 꼬리 모양을 보니 민가에서 집고양이라는 표시로 어릴 적 끈을 묶어 꼬리를 잘라낸 것 같았다. 여느 길고양이처럼 눈 마주치기 무섭게 도망가지 않고, 스님의 물음에 “야옹” 하고 응답도 했다.
고양이 옆에는 찢어진 쓰레기봉지가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듯 스님을 올려다보며 계속 소리를 냈다. 급한 허기라도 가시게 하려고 스님은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서 내왔다. 정신없이 우유를 핥는 고양이 곁에 스님은 토스트도 구워 내줬다. 고양이는 빵을 먹지 않았지만, 스님이 방에 들어간 지 2~3시간이 지나도록 같은 자리에서 기다렸다. 떠나지 않는 고양이를 본 스님이 일부러 이리저리 걸어봤다. 고양이는 스님 발끝을 졸졸 쫓았다. 출가한 이래 어떤 인연에도 얽혀본 적 없는 스님은 마음속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살펴주면 나랑 살 건가.’
스님이 한참 냥이를 돌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냥이는 예상대로 집고양이였다. 송광사에 30년 넘게 다닌 한 신도가 몇년 전 절간 창고를 지키라고 냥이를 데려다 풀어놨다. 한동안 그곳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던 냥이는 영역 싸움에서 졌는지 대웅전에 자주 나타났다. “큰절에 있던 스님들이 냥이를 자주 봤대요. 다른 고양이와 다르게 유독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곁을 잘 줘서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공동생활을 하는 큰절 스님들은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돌볼 상황이 아니거든요.” 대웅전 아래 마련한 작은 처소에 머무르는 보경 스님이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는 걸 냥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저는 몰랐지만 그동안 저를 쭉 지켜보고 있었겠지요. 저 사람이다, 하고 고른 거죠.”
“너 절에 살면서 살생하면 안 된다”
스님은 어느 날 자신의 품에 들어온 고양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고양이란 불현듯 왔다 무심코 사라지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한 이름도 붙이지 않고 보통명사 같은 ‘냥이’라고 했다. 하지만 냥이는 강아지처럼 스님 그림자를 밟고 다녔다.
그렇게 냥이와 스님은 일과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스님이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냥이가 와서 기척을 한다. 냥이를 보면 고양이가 혼자 있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건 오해다. 냥이는 스님더러 자기 밥 먹는 걸 지켜보라는 듯 밥 자리까지 스님을 끌고 나오곤 한다. 밥 먹는 냥이를 스님이 가만히 빗질해주면 싫은 기색 없이 한참 오독오독 사료를 씹는다. 오후에는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불일암까지 산책을 하기도 하고, 매일 2~3시간씩 산행을 하는 스님 뒤를 밟기도 한다.
그렇게 연을 맺고 스님의 보살핌을 받기 시작하자 냥이도 스님에게 보은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냥이가 쥐며 새를 잡아 스님에게 선물처럼 부려놓고 갔다. 어떤 날은 배가 고팠는지 머리와 꼬리만 남겨둔 쥐를 문 앞에 다소곳이 모아뒀다. 처음에는 잔인하다고 화를 내다가 어떤 때는 냥이를 대신해 용서를 빌기도 했다. “살생중죄금일참회, 오늘 하루 살생한 것을 참회합니다. 앞으로 절대 살생하지 말거라.” 스님과 자주 걷는 ‘무소유길’에서 냥이는 버리고 비우기의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냥이는 스님의 반응에 한동안 무안한 듯 주눅 들어 지내다가 이내 그 뜻을 알고 더는 사냥감을 스님 곁에 가져다두지 않는다고 한다.
참선하는 고양이?
고양이를 기르는 반려인들은 고양이를 만난 이후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들 말한다. 스님도 그렇다. 냥이를 만나고 자신이 평생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을 느꼈다. “우리 스님들은 직접 가족을 꾸려본 적이 없어서 (그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을) 알 수가 없어요. 처음으로 집착이라면 집착, 의무감이라면 의무감 그런 관계 속에서 지내보면서 바깥세상의 가족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거죠. 냥이가 제게 와서 세상의 많은 것을 일깨워줬어요.”
고양이에게서 무욕의 마음도 배운다.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참선하는 선승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뭘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닌, 고양이에겐 그런 시선이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까지 보진 못해요. 무엇을 해도 의도적인 게 있고, 마음속에 생각의 끈이 떨어지지 않고, 개인의 욕망이랄지, 미련, 여러 가지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이잖습니까. 내가 명색이 참선을 한다지만 고양이 마음의 경지에는 오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순천/글·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영상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미니 다큐 ‘스님과 냥이’는 애니멀피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회인 3편은 6일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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