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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것은?(Falling in love?)

forever1 2021. 10. 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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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것은?(Falling in love?)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 난 루치안 프로인트(Lucian Freud. 1922~2011)는 초상화(肖像畵, portrait)를 그릴 때 마치 미지의 세계 앞에 선 탐험가(探險家, explorer)처럼 모델에게서 몇 미터 떨어져 손차양을 만들어 모델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모델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흥미(興味, interest)를 느꼈습니다. 옷의 감촉과 옷자락까지 모두 특별했습니다. 어느 하나도 일반적인 대상이나 이상적인 대상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달걀 하나를 그리더라도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모델은 신비로운 존재이자 풀어야 할 수수께끼(puzzle)였습니다.

그는 그림을 미리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야 한다.” 그는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대신 “불안을 자아내는, 말하자면 살아 있는” 형상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초상화란 관람객(觀覽客, visitor)을 “빨아들여서” 그림 안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만드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모델을 바라보는 것보다 “모델과 함께 있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소설(小說, novel)도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기를 발견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되는 방법이라는 뜻이었을까?

그는 사람들에게 충격(衝擊, shock)을 주어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늘 진실(眞實, truth)을 말하는 편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아내의 초상화도 여러 점 그렸는데, “캐롤라인을 그렇게 잘 알았던 적이 없다”라고 고백(告白, confession)했습니다. 누군가를 알려면, 혹은 자기를 잘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루치안 프로이트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이 흥미롭거나 걱정스럽거나 즐겁게 느끼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건(Perfect and Absolute Event)”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잘못 이해할 수 있을까요?

치안 프로인트처럼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흥미를 가지고 풀어야할 수수께기처럼 생각하면 일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結果, result)를 이끌어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속적인 말이 되겠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면 거기에는 분명히 보상(補償, compensation)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보상은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명예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 또한 그렇습니다. 루치안 프로이트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이 흥미롭거나 걱정스럽거나 즐겁게 느끼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건”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싸울 일도 없고 상대를 비방(誹謗, slander)할 일도 없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루치안 프로이트처럼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努力, effort)해야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단기(檀紀) 4,354년(CE, Common Era 2,021년) 10월 16일

소백산 끝자락에서 작가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