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세계 금융시장을 떠돌고 있다. 미국 경기침체라는 유령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이 유령을 잡기 위해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부시 정부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연초부터 글로벌 증시도 요동치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가 금융시장 불안을 넘어 실물경제로 파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경제지표들이 잇달아 발표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말 미 연준의 50bp(basis point·100분의 1%) 금리인하 정책에 힘입어 반등하던 미국 증시도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다시 기가 꺾였다. 체인점 매출 부진, 도매 재고량 증가, ISM서비스업지수 급락 등 경기하강 위험을 미국 증시가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ISM서비스업지수는 41.9로 급락해 기준선을 크게 하회했을 뿐 아니라 9·11테러 이후 발표된 수치(40.5)까지 근접해 서비스산업 활동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해 10월말 이후 최근까지 미국 증시는 14% 하락했으며 같은 기간 일본, 중국, 한국 증시는 20% 이상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어, 미국 경제지표가 부정적으로 발표될 때마다 글로벌 증시의 불안한 행보가 재연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요동치는 글로벌 주식시장
일반적으로 경기침체는 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시기를 뜻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상당 기간에 걸친 경제활동의 전반적 후퇴를 의미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GDP뿐만 아니라 산업생산, 고용인원, 소매판매, 개인소득 등을 주요 지표로 사용해 미국경기 순환주기(business cycle)를 공식적으로 판정한다. NBER의 경기 판정은 사후적으로 이뤄지지만, 최근까지 발표된 지표들을 통해 미국 경기상황을 짚어볼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미국 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연 0.6%에 그쳐 경기침체가 현실화하리라는 의구심을 키웠다. 그러나 전년 동기에 비하면 2.5% 성장해 경기침체 국면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들의 재고 축소와 주택건설 등 투자 부문의 부진이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으나, 소비와 수출 부문은 여전히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보다는 재고조정을 통해 경기둔화에 대응하고 있다. 산업생산 역시 이전 경기침체 국면과 비교해보면 건실한 수준이다. 소매판매와 개인소득 관련 지표 역시 아직까지는 경기침체 징후가 뚜렷하지 않다.
문제는 고용 부문이다. 지난 1월 미국의 비농업 부문 고용인원이 전월에 비해 1만7000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자리 수가 감소한 것은 2003년 8월 이후 처음이다. 1월 고용지표에서 특기할 점은 민간 서비스업 부문의 신규 고용 규모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 이전까지는 민간 서비스업에서 생긴 신규 일자리 수가 건설업과 제조업 부문에서 줄어든 일자리 수를 크게 상회하면서 월 평균 9만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창출됐다.
서비스업의 신규 고용 둔화는 미국경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 미국의 경기침체 국면은 고용 감소와 함께 시작됐기 때문이다. 또한 고용인원 감소는 순차적으로 소비, 소득, 생산 등 다른 부문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그림 1> 참조).
경기침체 앞서 증시 하락
금융시장에서도 경기침체를 시사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6월과 2000년 8월, 30년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과 3개월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 스프레드(두 개의 채권 또는 분리된 채권시장 사이의 수익률 차이)가 마이너스권에서 저점을 형성한 후 7~13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장단기 국채수익률 스프레드가 지난해 2월 바닥(-33bp)을 확인한 이후 10개월째 반등하고 있다는 점은 현재 미국경기가 침체국면 진입을 앞두고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그림2> 참조).
최근 IMF(국제통화기금)는 2008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전망치 4.9%에서 4.1%로 크게 하향 조정했다. 미국경제 전망이 불투명해진 탓이 크다. 미국경제성장률도 1.9%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1월말 현재 주요 투자은행들의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평균 1.5%이다. 상반기 중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는 기관이 점차 늘고 있고, 미국 성장률 전망치도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에 앞서 주식시장은 하락 추세에 접어들고, 경기침체가 끝나기 전에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시작된다.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가 저점이 가까이 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경기침체 국면 시작 또는 직전에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정책이 본격화한다. 최근 5개월 동안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낮춘 것은 금융시장 불안뿐 아니라 경기하강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경제는 경기 사이클상 경기침체 직전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경기침체 국면에서 S·P500지수가 얼마만큼 하락했는지를 살펴보면, 앞으로 미국 증시의 추가 하락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1950년 이후 미국에는 9차례 경기침체 국면이 나타났으며, S·P500지수는 경기침체 이전 주가 고점에서 경기침체 기간 중 주가 저점까지 평균 25.6% 하락했다. 미국 연준은 2007년 9월 금리를 인하했으며, 10월말에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S·P500지수는 최고점에서 19.4%(1월25일 기준) 하락했다. 과거 9차례 경기침체 국면의 평균 하락률을 고려하면 S·P500지수의 저점은 1195p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 증시는 가파른 주가 하락을 통해 경기침체 우려를 상당 부문 반영했다.
2분기 말 미국 증시 저점 가능
물론 주가 하락폭이 크다고 해서 바로 상승 반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동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더 이상 경기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또한 통화정책 당국의 금리인하 기조가 끝나는 시점이 경기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연방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오는 8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인하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주요 경제지표들이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연준의 통화정책이 금년 3분기 중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경제는 오는 2분기와 3분기 중에 경기침체 국면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5월부터 시행되는 세금 환급 등 1500억달러에 달하는 미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은 하반기 미국경제 성장률을 0.5~1%p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경제가 침체 국면에 돌입해도 침체 기간이 예년보다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침체 국면이 끝나기 전에 저점을 형성하는 일반적인 주가 패턴을 감안하면, 2분기 말 또는 3분기 초에 미국 증시의 저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의 경기침체 위험이 최고조에 달하는 올 상반기에는 주식시장이 고난의 시절을 겪겠지만, 하반기에는 안정적인 상승 국면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 투자기간을 길게 잡아라
현재 S·P500 기업의 4분기 경상이익은 -17.9% 수준으로 낮아져, 2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이익 증가율은 각각 0.3%, -0.1%로 전망된다. 미국 기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것은 대부분 금융부문의 부실자산 상각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S·P500 금융부문은 대규모 부실자산을 상각 처리하면서 순손실을 기록했다. 1월말 시작된 미국 증시의 반등이 지속될지 여부는 금융주의 추가 자산 상각 규모에 달렸으며, 채권보증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 및 자산담보부채권(ABS) 가격 동향이 금융기업들의 실적 개선에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경기와 금융주 실적에 대한 확인 과정이 당분간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영향으로 국내 증시는 약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금년 상반기 중 주식시장은 험난한 여정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투자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경기는 추세를 형성해 움직이고 주식시장도 경기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경기침체 기간보다 경기확장 기간이 훨씬 더 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기확장 국면은 평균 57개월 지속된 데 비해 경기침체 국면은 10개월에 그쳤다. 또한 경기침체 국면이 끝나기 전에 주식시장에서는 약세장(bear market)이 마무리되고 강세장(bull market)이 시작된다는 점도 장기 투자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중장기적으로 주식시장에 대해 낙관한다면 적립식 펀드가 유용한 투자 수단이 될 것이다. 적립식 펀드는 주가하락 국면에서 분할 매수하므로 주식의 평균매입단가를 낮추는 효과(cost average effect)를 누릴 수 있으며, 이후 주가상승 국면에서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목돈을 한번에 투자하는 거치식 펀드에 비해 적립식 펀드는 대외적 불확실성이 높아 최적의 투자시점을 포착하기 어려울 때 투자 시기에 대한 고민을 줄일 수 있다. 투자 시기를 분산시켜 시장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적립식 펀드의 전략인 것이다.
▼ 투자 기본에 충실하라
주식시장이 어려워질수록 기본에 충실한 투자는 빛을 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은 경기침체 시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지침이다. 워런 버핏은 주가 시세의 흐름보다는 개별 기업의 내재가치를 읽어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 그는 단기시세 차익을 위해 주식을 매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신중하게 선택한 종목을 장기 보유함으로써 경기 사이클의 부침을 극복하고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버핏은 자신이 관심을 갖는 회사에 대해 6가지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대기업, 적어도 세전 이익이 7500만달러 이상인 기업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기업 △부채비율이 낮고 자기자본 수익률(ROE)이 높은 기업 △합리적이고, 솔직하고, 업계의 관행에 도전할 용기가 있는 경영진을 둔 기업 △회사 활동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적정 인수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이다.
이런 기준에 입각해 투자한 기업 중 하나가 한국의 포스코였다. 버핏은 철강산업의 장기 호황 사이클과 달러 약세 전망에 근거해 포스코에 투자했다. 버핏의 투자 원칙을 요약하면 ‘자신이 잘 아는 우량한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해서 그보다 낮은 가격에 매수하고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단기성 재료와 이벤트 등에 현혹되어 종목을 매수하고, 매수한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그때서야 종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종목 선택은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아니라 기업 실적과 가치평가를 잣대로 삼아야 하다. 또한 매수하기에 앞서 충분한 조사와 검토를 거쳐야 시세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 투자를 통한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 미국 증시 영향에서 벗어난 종목을 찾아라
작년 한 해 +0.69였던 KOSPI와 미국 S·P500지수 간의 상관계수가 올해 +0.89로 높아지는 등 국내 증시와 미국 증시 간 동조 현상이 뚜렷해졌다. 양국 증시의 동조 정도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문제가 본격 제기된 지난해 7월 이후부터 높아지고 있다.
상반기 중 미국 경기침체 위험이 미국 증시를 통해 국내 증시에 반영될 가능성이 큰 만큼 양국 증시는 높은 상관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당분간 미국 증시의 영향을 덜 받는 업종 및 종목, 즉 상대적으로 상관관계가 낮은 종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지난해 10월31일 국내 증시가 고점(KOSPI 2064. 85p)을 기록한 이후 조정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최근까지 시가총액 상위 100위 내 종목들 중에서 미국 증시와 동조관계가 낮은 종목을 찾아보는 것이 미국 증시의 하락 영향을 줄이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유가증권시장 내 시가총액 상위 100위 종목 중에서 한국가스공사가 미국 증시와의 동조 정도가 가장 낮았고, 이어 기업은행, 한일시멘트, 롯데제과, 우리금융, 롯데칠성, KT·G, SBS, 대우증권, 하나금융지주, 현대건설, KT, 하이닉스 순으로 분석됐다. 특히 한국가스공사, KT·G, 현대건설, 하이트맥주, 삼성정밀화학, 우리투자증권, LG생명과학 등은 지난해 8월17일 저점(KOSPI 1638.07p)을 확인한 이후 10월31일까지의 반등 국면에서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 눈높이 낮추고 방어적 포트폴리오 구축하라
상반기 중 주식시장의 약세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주식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출 필요가 있다. 높은 기대수익률은 과도한 위험 부담으로 이어져 자칫 투자손실만 키울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추면 의외로 좋은 투자 대안이 발견되기도 한다. 주가 급락 이후에 발매되는 주식연계증권(ELS)은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 투자상품이다. ELS는 투자금액의 일부를 우량채권에 투자해 안정성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주식 또는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해 수익성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운용성과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가입 시점에 만기수익률이 명시되고 조기 상환조건 충족시 수익이 확정 지급된다.
따라서 가입시점과 조기 상환조건이 중요한데, 최근처럼 주가 하락이 급격하게 진행된 경우 투자자들은 유리한 조기 상환 조건을 향유할 수 있다. 상품에 따라 다소간의 수익률 편차가 있지만, 낮은 위험 부담으로 연 15% 내외의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경기방어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일정 부문 현금 비중을 확보하는 보수적 접근을 권한다. 1월 중 주식시장이 급격한 가격 조정을 나타냈으나, 미국 경기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어 가파른 주가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식시장의 횡보세가 이어지는 기간 중 조정 국면에 대비해 세계경제 성장에 민감한 업종인 산업재(조선, 기계, 운송, 건설)의 비중을 낮추고, 미국 경기침체 영향에서 벗어난 경기방어적 내수 업종(전기가스, 음식료, 통신, 제약 등)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유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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