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GE는 ‘존경 받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롱런기업의 대표기업이다. 1892년 출범이래 미국 다우존스 공업지수에 생존해 온 유일한 장수기업이다. 1912년 시가총액기준 톱12에 속했던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12위 내에 속한 기업 3개사(GE, 엑슨, 로열더치쉘) 가운데 하나로 그 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GE의 위상 유지와 장수의 비결은 우수한 환경적응력에 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방만한 경영, 수익감소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했던 지난 1980년대 초에 잭 웰치 회장에 의한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으로 생존했다. 잭 웰치 회장 재임시 GE의 사업구조는 제조업에서 고부가의 서비스업(금융, 방송, 제품 기반 보수유지업) 중심으로 개편된 것이다.
최근에도 지식정보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GE는 새로운 사업방식의 창안을 위해 ‘Destroy Your Business팀’(DYB)을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여러 부서의 인력들로 구성된 팀으로, 기존의 자사 사업을 파괴시킬 수 있는 전자상거래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게 주된 업무다.
존슨 앤 존슨
존슨 앤 존슨은 1930년대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표방한 경영철학을 근간으로 실천해 온 윤리경영의 선두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업은 1029년 세계 대공황을 계기로 기업의 책임범위를 사회에까지 확대한다는 메시지 ‘Try Reality’를 공표했다. 또 1943년에는 윤리강령으로 수요자(고객), 임직원, 지역사회, 주주의 순서로 회사의 책무를 명기해 놓은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공표했다. 특히 1980년대 두 번에 걸친 ‘타이레놀 독극물 투입사건’때 보여준 자세로 존슨 앤 존슨은 윤리경영의 표상이 되었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자 회사는 언론에 제조과정을 공개하고 복용금지를 알리는 신문광고를 게재했으며 자발적으로 타이레놀을 회수, 폐기했다.
그 후 실패의 위험 부담이 컸지만 3중으로 포장된 타이레놀을 재출시했는데 단기간에 시장을 회복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또 4년 후 동일 유형의 사건이 발생하자 회사는 전량 회수와 함께 독극물 투입을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타이레놀을 개발하는 노력을 전개했다.
이외에도 존손 앤 존슨은 다양한 제도적 수단을 통해 임직원의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인사정책과 결부하여 윤리경영에 관한 준수교육, 이행 수준 및 의식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한편 관리직 사원은 1년 동안 행동규범을 준수할 것을 서약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빨간 얼굴 검증(red face test)’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들에게조차 부끄럽지 않을 행동이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또 2년에 한 번 이상 전 세계 직원을 대상으로 Credo 조사를 실시하며, 조사 결과에 대응한 계열사별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 실시하기도 한다.
이 같은 윤리교육과 관련해 존슨 앤 존슨은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신조’를 기초로 업무에 관한 의사결정을 것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는 ‘Living Our Credo Values’라는 훈련프로그램이다.
또 하나는 21세기에 요구되는 리더십의 핵심역량으로서 ‘우리의 신조’가치관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Standard of Leadership’이라는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이다.
Dell
Dell은 디지털화 변혁에 앞서 대응하여 10여 년 만에 세계 1위의 PC제조업체로 성공한 기업이다. PC업계 최초로 인터넷 기반의 주문생산 및 고객 맞춤식 판매개념을 도입하여 단기간에 세계 1위 업체 위치에 올랐다. 당시 업계 선두였던 컴팩은 대응에 뒤져 2002년 HP에 합병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Dell은 협력업체와 완벽한 정보 공유를 통한 주문생산 체제 구축으로 가상 계열화(Virtual Integration)를 실현했다. 이 결과 분당 전달되어 오는 주문의 실시간 처리 체제를 구축해 제고회전율을 경쟁사의 1/10로 낮췄다. 또 델의 엔지니어링과 조달팀은 협력업체와 웹을 통해 디자인, 개발 스케줄, 제품 정보 등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형고객을 위한 인터넷 프리미어 페이지(Premier Pages)를 구축, 변화를 주도했다. 이는 제품 옵션과 가격, 서비스 정책에 관한 고객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전자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폐쇄형 인터넷 사이트다. 이에 1999년 말 프리미어 페이지를 해당 고객의 정보 응용 시스템과 연결시켜 고객과 IT기반으로 직접 거래하는 체제까지도 실현시켰다.
레인콤
레인콤은 아이리버(iriver) 브랜드로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 1위(작년 시장점유율 22%)에 올라있는 벤처업체다. 디지털화 제품인 MP3 플레이어 하나로 설립 4년만에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CDP 세계 1위인 소니에 대항해 ‘Sorry, Sony’를 광고할 정도로 우수한 제품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레인콤의 성공비결에는 남보다 앞선 디지털 전자제품 출시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디지털 복합화 추세에 맞춰 당시 CDP와 전혀 다르며 널리 보급되고 있는 MP3 음악을 이용한 휴대형 오디오 기기개발로 성공했다.
크라이슬러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 크라이슬러는 1970년대 말부터 위기와 부활을 거듭 반복했지만 결국 1998년 11월 다임러벤츠에 흡수 통합된 기업이다. 회사는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와 일본차의 미국시장 확대로 도산 위기에 내몰렸지만 공적자금 투입과 대대적인 합리화로 극적으로 부활에 성공하는 듯 했다.
특히 1991년 미니밴과 SUV이 성공으로 크라이슬러는 완전히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쟁사들과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합병이라는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크라이슬러의 실패 이유로 가장 크게 꼽히고 있는 점은 차종 다양화 및 글로벌 기반취약이 지적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 후부터 차종 대형화 및 고급화 경쟁에 뒤쳐지면서 결국 시장 확대에 제약을 받게 되었고, 히트상품의 부족으로 순익감소라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여기에 1970년대 오일 쇼크, 1990년대 초 경기 후퇴에 따른 수요 감소를 만회할 해외사업도 취약해 도산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특히 1998년 다임러벤츠와의 통합도 일부 양산 차종을 중심으로 한 내수 중심의 사업 기반이라는 취약성이 그 빌미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제니스
1918년 설립된 제니스는 차세대 TV를 비롯한 기술력과 브랜드력을 보유한 세계적인 가전업체였다. 차세대 TV에 적용 가능한 기술을 세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으며 AT&T와 제휴해 디지털TV방식을 개발한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기업이었다. 또 미국 내 브랜드 위상도 최상위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이익 없는 성장’이라는 취약한 사업구조로 OEM업체였던 LG전자에 1995년 피합병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잉공급에 따른 제품가 하락경쟁에 효과적인 대응수단을 갖지 못해 매출 증대에도 경영수지가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디지털 부문에의 막대한 투자(1천4백만 달러), 리스트럭처링 추진으로 발생한 비용(2억1천6백만 달러)이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 피합병이라는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이스트먼 코닥
1888년 세계 최초로 필름 카메라를 발명한 코닥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급속한 실적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 1980년대에 주력한 사업 다각화는 시너지 창출에 실패했고 저효율을 극복하기 위한 다섯 차례에 걸친 리스트럭처링에도 실적 개선이 없었다. 1994년 외부 CEO영입으로 변화를 모색했지만 개혁에는 실패했다.
실패의 주원인은 신규투자보다 안정적인 사업에 안주했으며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디지털 이미지 제품과 같은 차세대 사업투자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필름 사업의 안정적인 수익선 확보에 주력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필름 및 카메라 시장에서의 독점 지위를 유지했던 과거에 안주, 경영효율과 스피드가 저하돼 있었다.
금년에는 아직 Cash Cow 사업인 필름사업도 급성장하는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세계 지역별로 판매 축소 및 중단을 계획하고 있을 만큼 코닥은 위기를 겪고 있다.
K-마트
K-마트는 미국 최초로 할인점 개념을 도입한 유통업체다. 1899년 설립된 K-마트는 1980년대 중반까지 할인점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1년 월마트에게 매출 1위 자리를 넘겨줄 정도로 쇠락했다. 그 후 여러 가지로 1위 재탈환 전략을 취했지만 자금 압박으로 급기야 2002년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K-마트의 실패는 월마트의 IT기반경쟁 전략에 대응이 뒤쳐졌기 때문이다. 후발업체였던 월마트는 철저한 저가전략을 추구해 온 반면 K-마트는 1위에 자만해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에 1981~1991년 10년 동안 매출액 대비 판매관리비 비율이 월마트는 20.1%에서 15.2%로 낮춰졌지만 K-마트는 22.8%에서 21.2%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특히 월마트는 업계 최초로 자동 발주에 의해 납품업체가 납품하는 IT기반의 첨단 물류시스템 구축을 통해 EDLP(Every Day Low Price)를 실현하면서 시장 내 확보한 위치를 구축했다. 이에 K-마트가 심각성을 깨닫고 대응에 나섰으나 너무 늦어 다양한 재생 전략이 실패에 그치면서 파산의 길을 걸어야 했다.
유키지루시(雪印)
유키지루시는 1925년 창업한 유업을 모체로 식품 등 1백8개사로 구성된 그룹이다. 청결과 건강을 상징하는 눈(雪) 상표는 ‘국민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연이은 제품 문제와 소비자 기만사태로 유키지루시는 2002년 파산을 하고 말았다.
2000년 유키지루시 유업의 우유를 마신 약 1만4천명이 식중독에 걸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오사카시는 당장 회수를 지시했지만 유키지루시는 회수에 소극적이었다. 또 자회사인 유키지루시 식품에서는 2001년 9월 광우병 문제로 홋카이도산 쇠고기의 납품이 불가하다는 지시를 받았음에도 담당자가 구마모토산이라고 속여 출하, 판매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이 문제를 조사하는 도중 호주산 쇠고기를 국내산 쇠고기로 속여 판매한 행각도 밝혀져 사업 유지가 더욱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닛폰햄
닛폰햄은 식육, 가공식품, 햄·소시지 등에서 업계 수위를 달리고 있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최우량기업으로도 손꼽히는 업체였으며 도쿄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운영으로 일반 국민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수입쇠고기의 국산 위장으로 창업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광우병 사태에 따른 소비위축으로 확보해둔 수입쇠고기를 정부의 국산 쇠고기 매입 제도를 이용하여 위장 처리하려고 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유키지루시 문제에 자극 받아 자체조사를 벌였지만 사실 은폐 등과 불충분한 대책으로 언론, 유통업계, 소비자단체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 사건으로 백화점, 슈퍼마켓 등 유통업체의 거래 중단, 반품으로 매출이 50∼60% 격감, 주당 1천4백53엔이던 주가가 불과 닷새만에 7백엔 대로 50% 폭락하는 사태가 초래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