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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국의 기업경영 20년

forever1 2008. 5. 19. 14:10

한국의 기업경영 20(개방의 파고를 넘어 세계로)

 

 

 

저 자

정구현

 

 

 

발행일

2008

오수 교수(서울대학교 경영학과)


■ 현대 한국 기업경영사를 제대로 조망한 기념비적 저작

지난 20년 간 한국기업은 자유화와 개방이라는 변화 요구에 직면하여 기업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혁신과 글로벌화라는 시대의 요구를 잘 수행한 기업은 성공했고 과거의 타성에 젖은 기업은 몰락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기업경영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분석, 서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격동의 한국 기업경영 20년을 통사적 접근과 기업생태계 관점의 분석을 기반으로, 환경ㆍ지배구조ㆍ전략ㆍ조직ㆍ성과(EGSOP) 모형이라는 프레임워크를 통해 다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리고 숨 가쁘게 헤쳐 온 지난 20년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향후 10년 전략을 제언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기업의 성장과정을 내외부적 환경변화와 그에 따른 경영시스템의 변화(지배구조, 전략, 운영 시스템)라는 체계적 틀로 분석한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 기업경영사라는 데 의의가 있으며 바로 이 점이 기존의 기업경영사와 차별되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기존의 연구결과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사업구조 및 지배구조와 같은 외형적 변화를 분석하거나, 연대기별로 정치.사회적 변화, 산업구조의 변천, 재벌의 성장과정을 거시적으로 다룬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

전자의 연구 유형은 재벌의 외형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주로 성장과정과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다루고 있다. 이들 연구의 단점은 디지털화, 중국의 부상, 컨버전스와 같은 글로벌 경영환경의 변화가 기업경영에 미친 영향이 빠져 있고, 기업의 경영혁신, 글로벌화와 같은 정성적인 경영기조의 변화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후자의 연구유형은 경영환경의 거시적 변화와 기업의 성과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육성정책, 산업구조의 변화, 재벌의 성과 및 문제점을 중심으로 서술하여 경제성장사 또는 산업성장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이들 저작 또한 성과 중심으로 기업을 기술하고 있어 경영 시스템의 변화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
.
이렇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이 다각적인 분석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입체적이면서 독창적인 방법론을 토대로 한국의 기업경영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격동의 세월을 거쳐온 한국기업 20년사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1
부에서는 지난 20년의 한국기업경영을 19871997년과 19972007년의 두 시기로 나누어 강산이 두 번 바뀐 한국의 기업경영 20년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먼저 민주화 요구가 촉발된 1987년은 기업에게도 진정한 경영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 전까지 정부의 경제개발정책하에서 독과점적인 보호의 우산 속에 있던 한국 기업은 자유화와 개방이라는 화두 앞에서 대단한 투자와 성장의 다이내믹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다가오는 외환위기와 몰락의 전조이기도 했다
.

1997
년 외환위기로 한국 기업은 대전환의 시련을 겪게 된다. 모든 것이 해체되고 수많은 기업이 몰락한 가운데서도 일부 기업은 글로벌화에 성공하면서 세계 속의 기업으로 부상하였다. 기업의 명암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게 된 것이다. 기업경영이 내실 위주로 바뀌고 혁신 노력이 배가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반기업정서의 확산과 함께 기업경영의 보수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

2
부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의 출현, 벤처기업의 부침과 옥석 가리기, 소기업의 경영 악화’ 등 한국의 기업생태계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먼저 매출 10조 원, 영업이익률 10% 이상의 이른바 ‘10-10 클럽’ 기업들이 등장하여 글로벌기업의 반열에 들어섰다. 외환위기는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IT로 대표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늘 선진기업을 뒤쫓기 바쁘던 한국 기업은 IT 기업을 중심으로 일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더불어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 분야에서도 약진함으로써 제조 강국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

한편 디지털화는 벤처기업의 부상이라는 현상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나친 버블이 형성되고 그것이 꺼진 후유증은 실로 막대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벤처기업의 옥석 가리기가 상당히 진행되어 건전한 벤처 생태계의 기반을 쌓고 있다. 대기업이 치열한 경쟁 끝에 일부 글로벌 기업화에 성공한 반면 소기업은 전반적으로 경영이 크게 악화되어 중소기업의 생존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정책의지가 포괄적인 양적 지원으로 반영되면서 생태학적 측면에서 종의 수가 너무 많아진 결과이다
.
여기서 이러한 기업생태계의 변화를 재무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기업이 수익성을 중시했으나 평균적으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수익성 패러독스(paradox) 현상을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외환위기 이후 기업성장이 크게 둔화된 가운데 시장개방과 세계화가 가속화되자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었다. 그 결과 마진폭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적어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경쟁력의 차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가가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매출액 100억 원 미만의 기업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상대적인 규모가 미달한 관계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고 그 편차는 더욱더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기업실적을 보는 데 있어서 전체 평균을 해석하는 데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제 기업실적에 있어서 평균치의 의미는 크게 축소되었다. 과거와 같이 경기 사이클에 따라서 기업실적이 전적으로 좌우되는 현상은 점차 사라져가고 개별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바야흐로 치열한 기업전쟁이 벌어지는 숨 가쁜 순간인 것이다.



20년의 기업경영패러다임의 변화분석


3
부에서는 한국의 기업들이 거대한 환경변화와 그 응전의 과정에서 지배구조ㆍ전략ㆍ시스템을 중심으로 기업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EGSOP 모델 중 경영과정 부문을 설명하는 소유지배구조(governance), 전략(strategy), 그리고 조직(운영시스템)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EGSOP
모델은 국제화의 흐름과 급변하는 세계 경제환경,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패러다임이 등장함에 따라 이에 알맞은 새로운 비교경영의 틀로 등장하였다. 이 모델은 환경과 기업조직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외부환경과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전략, 그리고 조직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부환경은 거시적인 경제. 정치제도적인 부분을 포괄하는 사회제도적 환경과 언어, 종교를 포함하고 전통과 관습, 그 밖의 문화적 요인들에 해당하는 문화적 환경, 그리고 기업이 속해 있는 시장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과업환경으로 구분하고 있다. EGSOP 모델이 기존의 모델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소유지배구조와 전략, 그리고 조직이라는 세 가지 영역을 축으로 기업의 경영을 구분하여 분석한다는 점이다. 소유지배구조의 경우, 지금까지의 모델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으로서 이미 상이한 국적의 기업들 간 소유지배구조의 차이와 다른 경영과정 부문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어왔다. 전략은 기존의 모델이 경쟁전략만을 포함시킨 것에 비해, 다각화와 자원투입을 결정하는 사업영역전략, 글로벌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는 세계화 전략을 추가하였다. 조직에 있어서는 구조와 시스템, 인력과 기술, 그리고 공유가치로 설명되는 5S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
먼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1987년 이후 20년 동안 크게는 세 가지 변화가 소유와 경영의 일치를 유지하려는 ‘가족자본주의’에 압력을 가해왔다. 첫째, 기업 규모 확장에 따라 창업가족의 소유지분이 감소했다. 둘째, 대기업의 소유구조에 대해 정부정책이 변해왔다. 셋째, 영미식 지배구조가 도입되고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규율이 시작됐다. 이러한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창업가족은 기업경영 혁신, 주력사업 집중, 순환출자 확대 또는 지주회사 전환 등 다각도로 대응해왔다. 이 책은 앞으로 한국의 가족자본주의가 순환출자 및 금산분리에 대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겠지만, 지주회사 제도를 활용하며 상당 기간 현재와 같이 자본시장의 규율이 강화된 ‘수정가족자본주의’의 모습을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 한국 기업 20년간의 패러다임


다음으로 지난 20년간 경영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사업전략, 글로벌 전략, 고부가(高附加) 전략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먼저, 사업전략 측면에서 한국 기업은 ‘선택과 집중’을 키워드로 설정하였다. 그에 따라 비관련 다각화에서 업종전문화로, 외형 성장 위주에서 내실 추구로, 공격적 투자에서 수비적 투자로 전환하였다. 한편, 이처럼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내실을 추구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과거 투자의 시대에 우리 기업이 보여주었던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 글로벌 전략 측면에서 한국 기업은 대단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외형적인 해외 진출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미국ㆍ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신흥시장 등으로 진출 지역을 다각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단순 현지화 전략에서 진전하여 글로벌 통합 전략을 추구하게 되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전략은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생존ㆍ성장 전략이라 하겠다
.
셋째,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후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고부가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과정에서 뒤떨어진 기술을 재빨리 따라잡는 추종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나섰으며, 디자인과 서비스를 차별화 요소로 설정하여 프리미엄 브랜드를 창출하는 소프트 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
기업이 경영전략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사ㆍ노사, 조직 등의 운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사ㆍ노사, 조직 측면에서 한국 기업은 이러한 두 번의 분기점을 거쳐 연공주의(年功主義)에서 능력주의(能力主義), 그리고 성과주의(成果主義)로 이행되어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87년 이전이 입사연도나 학력, 연령 등을 중시한 ‘연공주의시대’, 1988년부터 1997년 사이가 직무수행능력을 중시한 ‘능력주의시대’, 그리고 199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가 가시적 재무성과를 보다 중시하는 ‘성과주의시대’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
또한 한국 기업의 프로세스 혁신을 정신무장에서 방법론적 접근으로, 품질혁신에서 경영 전반의 혁신으로, 로컬 최적화에서 글로벌 최적화로 사무자동화에서 IT 기반의 혁신으로 규정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

4
부에서 저자는 향후 10년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임을 지적하며 새로운 10년을 위한 한국 기업의 과제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년의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여 일부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랐으나,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많은 기업에게는 점점 거세게 다가오는 개방의 물결이 더욱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072008년을 계기로 기업의 환경은 다시 한 번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여기서 향후 10년간의 변화를 가늠해 보고, 거기에 대응해서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전략의 유연성, 맞춤형 글로벌화 전략, 지식조직으로의 전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상화 등 네 가지로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언은 교과서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론이 아니라 기업 현실을 직시한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꼭 경청하기를 부탁하고 싶은 대목이다
.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경영 20년》을 일별해 보았는데 이 책자는 학계, 특히 한국 기업경영사를 연구하는 학자와, 나날이 치열해지는 기업경영환경하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기업경영진 등 업계관계자, 기업하기 좋은 국가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정책담당자 등 기업과 관련한 모든 이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삼성경제연구소 정구현 소장과 9인의 전문가들이 무려 1년 반이라는 귀한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한 결과가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한국의 기업경영 20(개방의 파고를 넘어 세계로) / 정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