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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묻다

forever1 2022. 12. 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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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묻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여 닭들에게 개 사료를 조금 던져 주고 먹을 물부터 주었습니다. 요즘 너무 추워서 닭이나 개에게 준 물이 꽁꽁 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의 닭들은 아침에 문을 열어주면 온종일 마당에서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잔답니다. 그런데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이 궁금해서 닭장에 들어갔더니, 검은 수탉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대뜸 이 닭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닭은 붙들었더니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잡혔습니다. 모이주머니를 만져 보았더니, 모이를 전혀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앙상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짐작하건대 벌써 며칠을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닭의 볏을 보니까 상처가 있었고 닭의 머리털에는 피가 말라 굳은 것이 새끼손가락의 손톱 크기만 한 것이 보였습니다. 큰 수탉의 공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먹지 않은 채 그를 양지바른 곳으로 안고 가서 30여 분 동안 전신을 마사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물을 먹였습니다. 물을 몇 모금 먹고 나더니 사료도 조금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실로 안고 들어와 큰 종이상자에 넣고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렸는데, 토한 자국과 물똥을 싼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픈 닭을 안고 다시 마사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자꾸만 숙이곤 합니다.

사실 저는 우리 집의 닭을 반려동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비록 닭이지만, 아내와 함께 같은 식구로 생각하면서 키우고 있답니다. ‘닭 대가리라는 말이 있지만, 닭도 키워보니까 상당히 영리합니다. 제 목소리도 알아듣고 제 차 소리도 아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퇴근하면 닭들이 모이를 달라고 우르르 달려오곤 한답니다. 이렇게 키우고 있는 닭이 아프니까 조금은 마음이 아픕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닭의 볏과 몸통 그리고 다리를 다시 마사지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닭을 안고 볏을 마사지해 주고 있는데, 그는 두 눈을 스르르 감더니 토하며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가슴 부위를 조금 세게 수 분간 눌러주며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죽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그지없이 아픕니다.

아내의 뜻에 따라 그를 하얀 꽃이 피는 부용 밑에 묻어 주었습니다. 아무쪼록 방금 죽은 우리 수탉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기(檀紀) 4,355(CE, Common Era 2,022) 1217

소백산 끝자락에서 作家 김 병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