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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길들인다는 것

forever1 2023. 2. 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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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길들인다는 것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원래 저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아내가 워낙 참깨와 땅콩 등을 재배하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두와 살구 그리고 매실과 대추 등을 많이 심어서 가꾸고 있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돈이 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돈보다 재미로 짓는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골칫거리가 잡초(雜草, weed)와 병충해였습니다. 사실 병충해는 살충제와 살균제를 섞어서 살포하면 되는데, 작물들 사이에 난 잡초들은 제초제(除草劑, herbicide)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늘 애를 먹곤 했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추천한 미움받는 식물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존 카디너(John Cardina)가 지은 책으로서 원제는 Lives of Weeds(잡초의 삶)입니다.

이 책 19~21쪽에 보면 잡초를 길들인다는 것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흥미로워서 가지고 왔습니다.

<잡초라는 개념 자체는 구군가 잡초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고대인들은 나무 열매와 산딸기를 채집하러 다니다가 다른 식물이 없는 곳에서 유용한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유용한 식물은 다른 식물과 달리 식품, , 각종 재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유용한 식물을 훼방하는 식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의식 속에 잡초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잡초는 단순히 과일과 열매를 수집할 때 피해야 할 식물이 아니라 의심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잡초라는 개념이 탄생하자마자 잡초 제거라는 환상이 등장했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길들인 작물이 충분한 햇빛과 물과 양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자연을 통제하고 기술을 발명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걸음(혹은 실수) 중 하나인 농업혁명에서 잡초의 역할을 간과해왔다. 학교에서 우리는 대략 12000년 전에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 영리한 인간들(주로 여성)이 식물을 재배하고 작물을 길들였다고 배웠다. 사람들은 방랑과 채집을 포기하고 몇 가지 식물과 동물을 선별해 정착 농업을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사회구조를 갖춘 시민사회가 등장했고, 교통 체증과 소셜미디어 같은 문명의 다른 특징들도 뒤따랐다.

몇몇 저술가들은 밀과 감자 같은 식물의 야생 조상이 길들여진 시점에 정착 농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식물은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인간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맛 좋은 복합 탄수화물을 제공해주었다. 사람들이 이러한 식물의 씨앗(곧 유전자)을 전 세계로 가지고 다니며 번식시켰고, 이 식물들은 생태적 성공을 보장받았다. 이 관점에서는 인간이 작물을 길들인 것이라기보다 작물이 인간을 길들여 한곳에 자리를 잡고 정착 농업을 발명하도록 유인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인간이 작물을 길들인 것이라기보다 작물이 인간을 길들여 한곳에 자리를 잡고 정착 농업을 발명하도록 유인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라는 말이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삶이 편리하고 유익한 쪽으로 몰리게 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숨겨진 주인공이 있다. 사실 인간의 정착과 문명을 초래한 것은 잡초였다. 초창기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고 꺾꽂이를 해놓고 몇 달 뒤 돌아와 보니 밭에 자라나 있는 것은 수확할 작물이 아니라 잡초였다.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밭에 쪼그려 앉아서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대의 토양 경작 방법, 즉 구부러진 막대나 날카로운 돌을 사용해 잡초를 제거하는 괭이 재배(hoe culture)’가 등장했다. 이러한 원시적인 도구들로 땅을 갈아서 잡초를 제거하고 작물을 잘 자라게 하면서 위대한 농업혁명의 시대가 찾아왔다.>

저는 제초제를 사용해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괭이와 삽 그리고 호미 등으로 잡초를 제거하고 있으니까 원시인과 별반 다르게 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정착하게 하고, 밭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도록 한 것은 작물이 아닌 잡초였다. 잡초가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얌전하게 자라는 농작물과 달리, 잡초는 내키는 대로 싹을 틔우고, 농작물에 가야 할 양분을 빼앗았으며, 자기 씨앗을 인간이 거두어가도록 기회가 닿는 대로 씨앗을 퍼뜨려서 이익을 독차지했다. 잡초는 복합 탄수화물이나 영양 많은 열매를 내놓지 않고서도 인간을 길들였다.>

잡초가 인간을 길들였다는 말에 동의(同意, agree)합니다. 저 또한 밭에 잡초가 나지 않는다면 아마,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 놓고 수확할 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을 것입니다. 잡초가 작물보다 더 빨리 자라고 번성하여 작물이 그들에게 묻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주말(週末, weekend)이면 밭에 가서 제초제를 뿌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잡초가 인간을 길들였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정착 농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정착 농업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또한, 지금의 잡초가 만들어지도록 인간을 개입시켰다. 이후 약 12000년 동안의 역사는 곧 잡초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싸움을 통해 녹색 악당은 더욱 심술궂은 존재로 거듭났다. 잡초를 제거하려는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을 견뎌낸 종과 유전형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 끈질긴 잡초처럼 우리 인간들도 지구상에 살아남아서 인간 세상을 만든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올 봄부터 다시 잡초와 끈질긴 싸움을 펼쳐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늦가을(late autumn)에는 농사를 지어 손해(損害, damage)를 보았지만, 수확의 기쁨(joy of the harvest)을 안고 아내와 함께 환하게 웃을 것입니다.

 

단기(檀紀) 4,356(CE, Common Era 2,023) 25

소백산 끝자락에서 작가(Author) 김 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