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우화 사랑의 우화 2 바다로 흘러 들어가던 강은 곧 실망했습니다. 자신은 전부를 내던졌는데 막상 바다에 닿고 보니 극히 일부분밖에 채울 수가 없는 게 아닙니까. 그래도 강은 따스했습니다. 멀고 험한 길 달려온 뒤 고단한 몸 누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의 전부인데, 왜 나는 너의 일부분밖에 안.. 류시화님의 시방 2008.01.31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류시화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뒤에 숨은 붉은 열매처럼 여기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지켜보는 것이 있다 서서히 얼어붙는 수면에 시선을 박은 채 돌 틈에 숨어 내다보는 물고기의 눈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건방진 새처럼 무엇인가 있다 눈.. 류시화님의 시방 2008.01.29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류시화 누가 만들었는지 알 길 없는 인적 드문 오솔길에 놓인 작은 대나무다리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이제는 한 사람의 무게마저 지탱하기 힘든 내가 자주 가는 산책길 작은 대나무다리 내가 가졌던 모든 것과 가지려고 했던 모든 것 사이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헤어질 수밖.. 류시화님의 시방 2008.01.27
안개 속에 숨다 안개 속에 숨다/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 류시화님의 시방 2007.12.10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 류시화님의 시방 2007.11.23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 류시화님의 시방 2007.11.21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 류시화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은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 류시화님의 시방 2007.11.12
길 위에서의 생각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류시화님의 시방 2007.11.10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ㅡ 류시화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뒤에 숨은 붉은 열매처럼 여기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지켜보는 것이 있다 서서히 얼어붙는 수면에 시선을 박은 채 돌 틈에 숨어 내다보는 물고기의 눈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건방진 새처럼 무엇인가 있다 .. 류시화님의 시방 2007.11.02